"지난 여름 정혜 책방 휴가기간에 산엘 갔었어.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개를 소나무에 매달아놓은 사내들을 만났지. 살벌하더라. 사내 서넛이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었어. 솥단지까지 걸어놨드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거꾸로 매달린 개를 돌아가며 몽둥이로 패는 거야. 순식간에 개의 머리통이 피투성이가 됐어. 정혠 울상으로 내 뒤에 숨었지.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 줄 알아? 뭐가 잘못됐는지 개를 묶어놓은 줄이 풀렸어. 개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피를 흘리며 도망을 치더라고. 사람이란 지독한 데가 있는 것 같아. 그 일행 중에 주인이 있었어. 지가 기른 개를 그래 그게 무슨 짓인지. 그런데 그래도 주인이라고 그놈의 개가 말야. 부지런히 도망이나 칠 일이지, 주인 되는 사내가 메리! 메리! 부르니깐 그 소리를 듣고 개가 어쨌는 줄 알아? 달아나던 몸을 돌려세우고는 주인한테 가더라구. 꼬리까지 흔들면서. 나, 참. 피를 철철 흘리면서."
"......"
"정혜가 그걸 보더니 충격을 받았어. 얼굴이 하얘져가지구선 마른 풀처럼 풀썩 주저앉는거야. 부축해서 올라가려던 걸 그만두구 아래 계곡으로 내려왔는데 속엣걸 다 토해냈지...... 그날 나와 헤어지면서 정혜가 뭐랬는 줄 알어?"
"......"
"지금도 그 말 생각하면 멍해져."
"뭐랬는데?"
"내가 꼭 그 개 같아요......이러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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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님의 <깊은 슬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