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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슬 - 유금 시집 ㅣ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
유금 지음, 박희병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평점 :
참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조선 시대의 시집이 아니라 지금 시대를 그린 시집이라 해도 믿어질 것 같다. 저자는 다정하고 애틋한 시선으로 조선 사회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사람들이란 시인의 아내며 친구며 동시대를 같이 사는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실 그 따뜻함 속에는 세상살이에 대한 어쩔 수 없음이 담겨 있다. 친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친구가 찾아오면 불안해진다. (부끄러워라 너무 가난해/ 벗 찾아오면 맘 불안해지니.) 서른이 넘어도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은근한 비난도 있다.(사람들 모두 이리 악착스러우니/ 세상 보고 한 번 웃노라/ 농사지을 땅이나 조금 있으면/ 밭 갈며 자유롭게 살아갈 텐데.)
그런데도 저자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다음 구절은 그런 저자의 생각을 너무도 잘 드러내준다.
한 세상 같이 살며 얼굴 마주치니/ 길 가득한 행인들 형제 같으네.
예전 김광섭 시인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떠올리게 만드는 훌륭한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이덕무, 박제가의 시를 읽었고 이서구, 유득공의 시를 읽었다. 유금의 시에는 그들과는 또다른 무엇이 있다. 역자는 이것을 육침이란 말로 표현했다. 땅에 있으면서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인 육침, 그 말이 유금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다.
유금 노년의 시 하나를 더해본다.
지금 병들어 있으니
창가의 나무 퍽 청초하여라
맑은 바람 뜨락의 나무에 불고
장미는 꽃망울이 맺혀 있고나
몸 굽혀 새로 지은 시를 적다가
고개 들어 피어오르는 흰구름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