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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공부는 나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게 몇년인데, 아마 나는 평생을 공부하게 되지 않을까싶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내가 공부한 그것으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해도, 내가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부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KBS 1TV에 방영되었던 글로벌 대기획 <공부하는 인간>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미 KBS의 방송을 다루었던
<아시아, 유교의 힘>이란 책에서도 많은 걸 배운 기억이 있기에 이 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버드의 4명의 학생, 릴리, 스캇, 제니, 브라이언과 함께 세계 곳곳의 공부의 현장을 누비고, 공부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을 문화적
배경에서 짚어보고 있으며, 수메르인부터 시작된 공부에 대한 열정을, 그리고 앞으로 추구해야할 공부태도에 대해서 담고 있는 책이다.
우선, 대한민국 대치동의 공부현장, 이건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중국이었는데, 중국은 땅
덩어리가 넓은 만큼 명문대의 입학생은 제한 되어 있고, 아이들을 정말 혼신을 다해 공부하고 있었다. 중국의 수능시험 격인
<까오카오>를 대비하는 한 학생의 이야기는 아이와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수 있었는데, 중국 역시
공부전쟁에 있어서 어두운 그늘이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저샤오페이'라는 추가 입학을 위한
기부금의 금액이 날로 올라가고 있으며, '까오카오 이민'이라 해 지역별로 할당된 대학입학정원 때문에 위장 전입을 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공부와 돈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시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지 않았나 이런 생각?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이다라는 게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일본에서도 역시 입시 전쟁은 치열했다. 사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유치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시험을 본다니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지
않나? 하지만 사립학교는 학비가 비쌌고, 그렇기에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진 것 없는 부모가 자녀에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이는 몇 대째 가업을 이어 해당 분야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발휘해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만든 근간이라고 볼수도 있는데,한편으로는 가난한 부모의 비애라고도 한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인도! 인도 역시 인구가 많다. 그렇지만 인도 최고의 대학 인도공과대학(ITT)의 입학생 수는 정해져
있다. 미국 MIT 에는 합격해도 인도 ITT에는 불합격했다고 할 정도로 ITT는 인도인들의 꿈이고, 신분상승을 할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ITT에 입학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를 본다면 과히, 공부가 세상의
전부이구나라고 말할 정도다. 카스트제도에 의해 아직도 불가촉천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그들에게 ITT의 입성은 모든 것을 단숨에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공부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들의 목표만큼은 분명한 것 같았다. 안정된 미래와 경제력을 누리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조건이야 말로 공부라고 해야하나?
지금까지 지켜본 것은 동양의 나라들이었다. 그렇다면 동양인들은 왜 공부에 죽도록 매달릴까? 동양인들은 왜 개인보다 집단을 위해 공부하고
독립성보다는 관계성을 중시하는 걸까?
"서양 문화는 개인과 독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뭉르 인지할 때도 배경으로부터 분리시켜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동양 문화는 집단과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주변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사물을인식한다는 것이다. " -p.105
이 문장이야 말로 동서양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거 아닐까? 동양인들에게 공부의 목적은 개인을 넘어 가족, 공동체로 확장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학업성취를 이루는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공부의 목적이 아주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인들은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고, 그것이 강력한 끈기와 인내, 의지로 공부에 매진하게 만들어 높은 학업성취로 이어진다고 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지적 성취는 대부분 타고난 능력이나 가르치는 자질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즉, 능력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양인은 부정적 피드백을 받았을때 더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는 반면에 서양인들은 긍정적 피드백을 받았을 때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동양인은 성적이 나빠도 쉽게 좌절하거나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그 만큼 높은 학업성취를 이룬다는
것인데 나는 정말 이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차이일까? 이것말고도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많았다. 서양인은 튀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동양인은 무난한 것을 좋아한다. 평균. 딱 평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남들과 같이 가는 것, 공부에 있어서도 남에게
뒤처지는 걸 싫어한다.
"일반화 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낮은 자아를 '주체로서의 나(I)', 일반화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은 자아를 '객체
혹은 대상으로서의 나(Me)'라고 한다. 이 두가지 자아는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서양에서는 '주체로서의 나', 동양에서는
'대상으로서의 나'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즉, 동양인은 일반화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아 다른 사라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회에 존재하는 표준에 속하는 데
극도로 집착하는 것이다." p.142
표준에 집착하는 것은 나중에 일본인들에 대한 설명에서도 나오게 되는데, 이 표준이라는 거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것 같다. 누구나
무난하고, 누구나 튀지 않고 단체 속에서 함께 가려는 것, 그것이 공부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동양에서는 공부를 신분 상승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적이라고 할수 있다.
"동양 사회가 공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현상에 대해, 공부말고 성공을 보장하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같다고 생각했다. 공부가
곧 성공의 길이며 안정된 미래라는 의식이 팽배한 문화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동양인들이 공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 149
동양에서 공부를 신분 상승의 도구로 생각하게 된 근원은 어디서 부터일까? 유교사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논어>의 첫 구절,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브지 아니 한가' 를 보자면 기본적으로 유교는 학문을 출세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학문 그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두고 그 즐거움 추구하는 사상이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공부를 출세의 도구로 보는 문화의 근원을
'과거제도'에서 찾고 있다. 1300년간 지속되어 온 시험제도, 과거.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부정행위가 난무하기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부정행위를 할 할만큼 과거 합격은 달콤한 꿀과도 같았다. 오랜 시간 과거는 우리들의 문화 속에서 공부를 신분상승의 도구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끔 만들었고, 지금도 많은 동양인들은 신분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도 당장 먹을 거리, 입을 거리가 없다면 어느 누가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을까? 순전히 나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지식습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그것만으로 만족 할수는 없는 걸까 하고 말이다.
다음 장에서는 전세계 인구에 0.2% 밖에 되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공부를 가장 잘한다고 알려진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인들은 과거 수많은 핍박을 받으며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겨 이동해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절로 그들은 자신들이 지킬수 있는
것은 무형의 지식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유대인들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부모가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말에 사실 감탄을
했다. 다른 국가에서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서 담당한다고, 즉 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여겼는데 유대인들은 달랐다. 동양인과 유대인
모두 가족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 가족주의 문화는 두 집단의 교육열과 학습욕구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맞아지만 표출방식이 아예
다른 것이었다. 동양인들은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권위주의적 방식을 고수했고, 유대인들은 아이들의 주체적인 인격을 중시하며 상호적 가르침을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도 꼭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절로 자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고, 또 그들은 그들의 경전
<토라>를 기도하면서 공부한다. 기도가 바로 공부인 것이다. 서로 기도를 하면서 토라를 펼쳐두고 토론을 한다. 이런 학습 문화는
유대인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낸 것 아닐까?
유대인들의 <토라>와 토라를 해석해 둔 <탈무드>, 인도식 공부의 뿌리 <베다경전>, 일본의
노트 필기, 프랑스의 철학 공부, 살롱 문화등은 공부에 있어서 문화적 환경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토론을
즐기고, 인도인들은 암송과 암기를 , 일본인들은 표준에 대한 집착에서 노트필기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철학을 중시해,
대학 입학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도 철학시험을 치는 프랑스는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살롱문화를 발전시켜고 공부에 있어서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암기를 통해 주로 공부하는 동양과 질문을 통한 대화와 토론으로 공부하는 서양. 그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온다.
'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이기때문에 자기를 표현하거나 질문하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최우선이기에 자신을 무조건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능동적으로 토의나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은 확실히 다른 문화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부법으로 많은 것들을 이룩해 왔다. 타협을 좋아하는 동양과
논쟁을 좋아하는 서양,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과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서양. 타협하는 동양이 낳은 암기의 공부, 논쟁하는 서양이 낳은
질문의 공부. 어느 것이 더 옳고 좋다고 말하기는 뭐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한가지 방법의 공부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 맞도록 공부방식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 앞으로 공부가 주목해야할 것은 교류와 협력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점점 질문을 통한 협력과 소통의 공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동양과 서양 모두 같다. 미국동부에 위치힌 사립고등학교 필립스 엣기터 아카데미의 하크니스 테이블, 옥스퍼드대학교의 1:1
튜터 시스템과 옥스퍼드유니언, 꿈의 연구소 MIT 미디어랩 에서 보여준 소통과 교류의 공부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공부에 접근해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공부는 끝이 없다. 홀로하는 공부보다는 타인과 더블어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앞으로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권의 책 속에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을, 수메르인의 공부법에서 중국의 과거 제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부의 현장을 만날 수 있었고, 유대인의 역사와
유대인들이 공부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알수 있었다. 공부는 내게 앞으로도 뗄레야 뗄수 없는 소중한 친구이며, 앞으로 내가 더 나아갈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동양에서도 공부는 성공의 도구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차 속에서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깨달아가는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