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부터 선식을 탄 우유 한잔이 나의 아침식사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우유를 마시고, 컵을 씻고 있는데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남자가 약간 어두운 원목 색깔톤의 주방에서 혼자서 차를 마시고 싱크대에서 컵을 씻어 선반에 올려놓는 장면이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그 남자의 모습도 떠올랐는데 밝은색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와 짙은 갈색 치노바지를 입고, 약간 긴 스포츠형의 머리를 한 남자였다. 갑자기 생각난 장면인데 도무지 무슨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거다.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어느 영화였는지 기억속의 파일들을 들쳐보았는데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다가 딱 생각이 났다.
그건 영화가 아니라 소설책이었던 거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그 장면이 내 머리속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각인이 되었던건데, 공감각을 경험한 듯해서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묘사들이 영상으로 잘 느껴지기는 했는데, 시간이 흘러 이 정도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다니 잘 쓴 글이라고 할밖에...
그 소설의 제목은 하루키의 <기사단장죽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