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추천도 좋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고. 구매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진도가 안나가던지.. 그냥 띠엄띠엄 읽다가 말았다. 화자와 내가 너무 달라서 인가 감정이입이 도통 되지 않았다. 미성숙하고 여유로운 자의 투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암튼 영화도 그닥 보고 싶지 않고 중고책으로 내놓았다.
왜 베스가 벤을 그토록 지긋지긋해 하고 이혼을 요구했는지의 설명은 부족했고, 게리를 죽인 이후 그의 흔적을 지우고 게리 되기의 과정은 장황했다. 몬태나에서 안정을 찾는 과정은 너무 짧고, 앤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너무 작위적이고, 성공은 너무 급작스러웠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권선징악인지(죄를 지었으니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자아찾기인지.. 아메리칸드림인지..뭔지 혼돈스러운 상태다. 껍데기 같은 삶을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휴가지에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얘기를 기대했다가 불안과 고독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라 당황했다. 등장인물들에게서 나의 모습과 앞으로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서 조금 힘이 들기는 했는데 삶이란 견딤이라고 한다면 또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으리라 희망해 본다
선덕여왕 마지막회에서 비담에게 미생공이 "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자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뿐이다."라고 한 말처럼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다스려야 할텐데...
에도에서 펼쳐지는 소동극이다. 허물 하나를 덮는 데 무슨 이런 복잡한 일들을 벌이나 싶긴하다. 남에게 폐끼치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아는 일본인들의 습성이 잘 드러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폐가 될까봐 사소하게 덮어가는 일들이 결국에는 더 큰 폐가 되어버리곤 하니.. 거참...
가가 형사 시리즈 세번째다. 본작은 반전의 반전이 묘미라고 하는데 난 본 줄거리에는 별 관심이 없고(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전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가 형사의 인생행로에 더 관심이 갔다. 이쯤되면 가가 형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딴지일보의 필독의 글로 읽다가 책으로 보니 조금 편하기는 한데 생생함은 덜한 듯하다. 남아공월드컵 한국 대 아르헨티나 전 전날 아르헨티나편을 읽었기에 우리의 패배가 당연스러웠고 다행스러웠다. 당연하다함은 축구에 올인하는 아르헨티나만큼의 인적, 물적 토대가 없다는 것이고, 다행스럽다함은 축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맥락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암튼 축구와 정치/문화사를 절묘하게 엮은 지은이의 글솜씨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나에게 하루키는 한때는 내밀한 연인이었고 연애기간이 끝나고 나니 오랜 동안 친구였고, 이제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료다. 그의 모든 글들 에세이, 소설, 잡문, 르뽀 모두를 읽다 보니 책장 하나가 오로지 그의 책만으로 가득해졌다. 그의 글들이 모두 베스트라고 할수는 없지만 그의 장편 신간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고나 할까... 지난번 장편 해변의 카프카가 녹슨철을 혀로 댄듯한 날이서고 선뜻하고 사나운 느낌이었다면, 이번 장편은 친절해지고 부드러운 하루키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하루키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문장이 더욱더 맘에 와닿는지 모른다. 투명한 공기번데기가 은유하는 것이 뭔지는 모르나 나 역시 공기번데기를 내안에 감춰두고 있을 듯 하다.
물론 이 책은 하루키의 걸작은 아니며, 이 책만 읽은 사람에게 하루키는 그저그런 소설가 중의 하나로 여겨지겠지만 하루키의 추억을 안고 있는 나에게는 아껴가며 읽고 싶은 책이다. 그냥 문장들이 주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천천히 부유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