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북경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짧은 일정에 꼬박 일이라 만리장성, 명조무덤 같은 유명한 곳을 가볼 수는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 뭘 해야 하지?
"차와 딤섬과 페킹덕을 먹고 오렴"
"마사지 싸다. 많이 받아라"
토요일 저녁. 호텔 방에 들어서니 복숭아가 예쁘게 놓여 있네요.
복받고 장수하라는 뜻에서 복숭아를 잘 준다더니, 맛있습니다.
가방도 안 풀고 시내로 마사지를 받으러 갑니다. 다 받고 나니 밤이 늦었는데 배가 고파서
"어디 문 연 식당이 있을까요?"
물었더니, 마사지 가게 아저씨가 통역 겸 길거리에서 놀고 있던 중학생을 부릅니다.
"데려다 줄게요. 타요."
허걱. 얘가 내가 너보다 훨씬 무겁단다... 그래서 자정의 왕푸징 거리를 친절한 소년이 모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달렸습니다.
머문 곳이 외국인 많고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는 했지만, 제가 본 북경 풍경은 너무도 현대적이라 실망스러웠어요. 고층빌딩과 네온사인, 공사장의 크레인. 여기 저기 내년의 올림픽 홍보 간판도 눈에 띕니다.
1988년 직전의 서울도 이런 식이었겠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북경이 서울이나 동경과 다른 점은, 자전거가 아주 많고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차도 자전거도 보행자도 신호등 무시, 차가 오는지 사람이 지나가는지 서로 신경을 안 쓰고 제 갈길을 가더군요. 그거야말로 어떻게 좀 고쳐야 할 것 같던데...
일요일 아침. 일단 행사에 등록하러 내려갔습니다. 이름을 말하는데 등록 데스크에 있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한국 분이세요?" 라며 반가워합니다. 유학생이라네요.
"저기, 딤섬 맛있는 집 아세요?"
그랬더니 데스크에 있던 다른 중국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그 친구들이 여기저기 또 전화를 하더니,
택시기사한테 이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종이에 중국어로 주소를 적어줍니다.
왼쪽 주방에는 요리사들이 딤섬을 빚고 있습니다.
자스민차와 딤섬 열다섯알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공식 행사는 3시부터입니다.
굳이 가자면 자금성에도 갈 수는 있었겠지만, 연일 30도가 넘는 이상기온이라서, 햇빛 쨍쨍 아래 걷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 좀 더 서늘한 곳을 찾았죠.
꽁왕푸 恭王府
현재까지 베이징에 보존되어 있는 왕부(황족 저택)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홍루몽>의 무대라고 추측되는 이곳은 19세기 중반 셴펑 황제가 그의 이복 형제인 궁왕(제2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과 협상을 벌인 인물로 유명함)에게 하사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 당시 이화원이 전소되고 자금성은 불에 탈 위기에 처했으며.... 궁왕은 많은 양의 은과 카우룽 일부를 영국령 홍콩에 넘겨주는 것을 포함해 톈진 조약의 모든 조항에 동의했다. 그 대가로 베이징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지 않고 남게 됐으며, 공왕부도 그중 하나가 됐다....
전통 양식의 중국 정원은 자연과 건축물이 혼연일체를 이루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주요 구성 요소는 바위와 물로, 모든 요소들이 분명한 목적을 갖고 주의 깊게 배치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공왕부에 처음 들어서면 큰 바위 정원으로 인해 관람자의 시야가 약간 방해받게 되는데, 이는 관람자의 시선이 정원 전체로 분산되게 하여 좀 더 작은 광경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산 베이징 가이드를 비행기 안에서 읽고, 그럭저럭 가고 싶은 곳을 찾는데 도움을 받았다.
번역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언제나 내용은 실한 론리플래닛.
사생대회인지 곳곳에 그림을 그리는 고등학생들이 많았는데, 무료한 치안관들 그림 그리는 걸 한참 구경하고 서 있습니다.
황족의 정원은 세상을 축소하여 옮겨놓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기암의 다양한 배치와 더불어 숲, 폭포, 큰 연못, 작은 연못이 있고, 안쪽으로 긴 회랑을 따라가며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경극 공연장이 떠들썩합니다) 둥근 문을 통해 들어가는 안채가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모든 곳들이 이어져 있지만 공간마다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이, 정말 여러가지를 염두에 두고 지었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