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바람이 불어서, 가고싶어 가고싶어 노래를 부르지만, 멀지 비싸지 혼자 가기 난감하지, 게다가 나의 딜레마는 오로라가 너무 보고 싶은데 추운 건 딱 질색이란 말이지. 여름에 가자니 오로라를 볼 수 없고, 겨울에 가자니 춥고.  어쨋거나 사진으로 바람을 달래볼까나, 책을 골라들었다.

사진 좋네, 글도 좋고. 관광객으로서 들뜨지 않은, 하지만 자연의 긴 시간과 그 넓음 속에서 자연과 이웃에 신세지며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임을 아는, 게다가 외지인으로서 알래스카에 정착한 여행자의 시각. 

또 사진인가 하고 주문했더니, 이일을 어째. 사진은 몇장 없고 에세이집이다. 그런데 추천 -- 선물목록에 넣는다.

광활한 대지를 경험하고, 사람의 삶도 자연의 일부임을 몸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럴까. 겸허하고 담담한 글이 읽기 편하고 때때로 재미있고, 슬픈 일을 소재로 한 것도 아닌데, 읽다가 자꾸 눈물이 난다.

의미는 다르지만, 서재 제목도 빌려왔다. 이참에 서재 이야기.  이 게으르고 썰렁한 서재는 <여행의 기록>이다. 관광객으로 1~3일 잠시 들른 곳들의 사진이 대체로이지만, 한동안 미국에 살면서도 오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왜 사진을 잘 안 찍어 두었을까)

그래서 "익숙한 곳, 정착" 을 그리워 했는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보니, 익숙하고 편안할 것을 너무 많이 기대했을까, 또 여기가 낯설다. 그리고는 가끔 다시 미국엘 가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변한 것들이 적고, 일주일 전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다. 그러니까, 늘 그만큼 낯설게 이방인으로 살았는지도...

이젠 처음 가는 어딜 가도 그다지 낯설지 않고 전에도 와본 것 같고,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하구나, 한국에 돌아온지 2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그러니 언제나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도 "딱 내 자리"라고 느끼지 못하고, 어디에 가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볼 때도 다른 세계, 다른 이의 삶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세상인 SF, 판타지가 좋다)

그런가 하면, 부드럽고 따뜻한 땅에 뿌리내린 나무가 되고 싶다는 소망.
숲에 있어도, 들판에 혼자 서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무.
늘 새로운 곳을 밟고, 삶 자체가 여행인 것 같고, 하지만 "외로운 나그네, 떠돌이"가 아닌,
얼마간의 적적함에 초연하고 주위 풍경과 교감하고 발딛은 곳에 평온하게 녹아드는 나무이기를.

일본에서 전차를 타고 가다가 불쑥 알래스카의 곰을 느끼고 생각하는 호시노 미치오.
이 사진집의 글은 곰에게 말하듯 쓰여져 있다. 
해질녁의 풀숲 속에서 덜컥 마주친 곰의 얼굴이 재밌다.
책을 펼쳐든 것만으로도 빨려 들 것 같은 (동시에 밀어내는 듯도 한) 알래스카의 풍경.
불켜진 텐트 위 밤하늘에 펼쳐진 오로라, 숨을 삼킨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사진과 글은 좋고, 알래스카에선 계속 바람이 불어온다. 가고싶어, 가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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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05-3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하는 나무, 담에 빌려줘봐라.
저 위에 사진집 보고 왕창 감동먹은 건 아니지만(어째서인지 난 저런 책들에 동감도 감동도 잘 안 되더라구. 흠.) 보고는 싶네.

좋은사람 2007-06-0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가서 서점 들렀을 때 네가 이 작가 얘기한 게 떠올라서 찾았는데, 이넘의 고유명사 건망증이 도져서 작가 이름이 제대로 생각이 안 나더란 말이지.. 알라스카 샤신집을 외쳤으나 못 알아먹더라.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