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신영복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원래 시청역3번 출구 쪽에 있는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있을 강연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 하시고, 그를 기리는 임시분향소가 덕수궁 앞에 자리한 관계로 장소가 성공회대학교 성당으로 바뀌었었다. 본강은 'CEO와 함께 하는 인문공부' 2기 수료식이 있던 날을 잡은 것이었는데, 나는 별다른 약속이 없다던 신입사원 세 명을 데리고 참석했으며, 노무현 정부때 통일부장관을 역임하신 이재정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배와 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왼손은 오른손이 씻고 오른손은 왼손이 씻어준다며 좌우의 소모적인 이념 대립이 씻어지기를 희망하시는 한 마디로 운을 떼신 선생님께서는 곧바로 분필을 들어 칠판에 '여럿이함께'라 적으셨다. 출소 후 처음 이 글을 쓰시고 한글로도 액자를 채울 수 있는 디자인에 만족하시고 흐뭇해 하실 때, 한 친구가 남몰래 조용히 다가와서는 '여럿이 뭘 어쩌자고? 목적이 없잖아...'라는 의견을 주셨다고 한다.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의미심장했으리라. 그래서 단순했던 '여럿이 함께' 밑에는 목적의식 뚜렷한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라는 방서가 붙게된 것이다. 다음 사진은 우리집 서재와 화장실 사이 벽에 걸려 있는 바로 그 글귀다. 2005년 가을에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받은 멋진 글귀다.
당시에 우리 부부는 결혼한자 1년 반밖에 되지 않았었으니 '더불어 한길', '함께여는 새날'과 같은 신혼에 어울릴법한 글귀를 열망했으나 여럿이함께 신혼 생활할 것도 아니기에 내심 실망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 글이 우리 부부의 손아귀에 전해지던 날, 멀리 시골에 계신 장인어른이 갑작스럽게 전남대학교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고, 며칠 뒤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기시게 되면서 우리 가족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함께 생활할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병원과 집안을 오가며 가족들이 생활하는 집이 되면서 우리집은 정말 여럿이 함께 지내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갔다. 그때부터 나는 저 글귀를 보면서 선생님의 탁월한 선택에 탄복하고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아내가 장녀이다 보니 우리집은 큰집이 되었고, 입원하신지 몇 달 되지 않아 슬프게도 장인어른은 영면하셨지만 그럴수록 우리 가족은 저 글귀 아래에서 똘똘 뭉치게 되었다. 단지 가족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렇게 시작된 의미였다. 바로 그 해에 아내의 연년생 처제가 결혼해서 동서도 생기고, 최근에 조카도 생기는 등 가족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번 주말에는 셋째 처제의 결혼이라는 경사가 있어 다시 한 번 온가족이 우리집으로 모여들 것이다. 멀리 시골에서 아내의 친척들이 상경하여 여럿이함께 글귀 아래 둘러 앉아 한바탕 잔치를 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욱 들뜬다.
한 편, 언젠가 우리집에 놀러왔던 후배 오규협이 저 글귀를 쳐다보며 했던 말이 생각나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형, 여럿 어렵게? 뭔 말이예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게 읽어졌다.
당연하게 읽던 글귀가 달리 읽히다니... 다양한 관점이 아름다웠다.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 여럿이 어렵지 않게 즐거이 생활 하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