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일요일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오른쪽 키보드 앞에 발랄한 아가씨가 나타나 공연중 금기 사항을 유쾌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사진 촬영 안된다, 휴대폰은 꺼야 한다, 소란 피우지 말아달라 등의 노래가 어떤 대단한 노래처럼 울려 퍼지며 그렇게 공연 시작 전 분위기를 다스렸다. 공연 내내 연주와 노래, 효과음 등을 직접 무대 오른쪽에서 조정하던 웃음 헤픈 그녀는 박신영...

잠시 소등 후에 선한 미소의 잘 생긴 정장 청년 정원식이 왼쪽 끝에 등장하여 혈액형에 관한 농담으로 해피소드의 첫번째 에피소드를 예고한다.

A형은 소세지 (소심하고 섬세하고 지랄맞은...)
B형은 오이지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지랄같은...)
O형은 단무지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같은...)
AB형은 그냥 지지지라며 마무리 하는 농담~

아, 괜한 말 장난이지만 객석에서 그 순간만은 박장대소였다.

머리 큰 정원식, 키 큰 하남우, 섹시한 김유진,  귀여운 장주아... 그렇게 네 사람의 젊은 배우가 네 가지의 에피소드를 1인 다역으로 100분간 달군 이 공연은 미국 극작가 닐 사이먼 원작이라는데, 우리 상황에 맞게 아주 잘 로컬라이징 된 것 같다. 대학로 두레홀2관에서 현재 공연중이며, 네 가지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Episode 1 두 남자
앞서 혈액형별 농담이 예고 했듯 소심한 A형 사나이가 주인공이다. 두레구청(공연장 이름에서 따온...)에서 잔디를 관리하는 말단 공무원이자 소심하기 이를데 없는 남누는 아내와 함께 극장에 찾았다가 하늘같은 구청장을 만난다.  아내의 종용으로 구청장에게 안면을 트고 잘 보이려고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잘 했다 싶었는데 그만 앞좌석에 앉은 구청장 머리에 가래가 튀도록 재채기을 하고 만 것이다. 비록 불쾌하긴 했으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대범한 구청장에게 지나칠 정도로 용서를 비는 소심남은 마지 못해 용서를 받지만 그마저도 혹시 자신이 무시 당한 건 아닌지 해고된 건 아닌지 갈등하며 괴로워 하는데, 젊은 배우들의 눈빛과 열정이 빛나는 공연이었다.

Episode 2 두 여자
상류층 주인 마님은 연변 출신 가정부에게 두 달만에 급여를 주기로 한다. 가정부가 두달이 되도록 먼저 월급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으니 먼저 나선 것이다. 약속된 월급은 100만원인데 90만원이라고 주장하는 마님 앞에 고개 숙이는 조선족 가정부...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깨뜨린 그릇 변상액은 그렇다 치더라도 숙박비까재 제하고, 자신의 생일 선물값까지 요구하는 주인 마님... 거부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이 가녀린 가정부는 달랑 10만원만 남은 두달치 월급에도 안도하며 괴롭지만 스스로 만족하려고 한다. 풀이 죽어 돌아서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Episode 3 바람둥이 백서
바람둥이에게 필요한 두 가지... 참을성과 무시... 작곡가인 남우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친구인 원식의 아내 주아를 꼬시기로 작심한다.  교묘하게 원식을 이용하여 주아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이 위대한 바람둥이의 수법... 결국 그는 친구의 아내를 품을 수 있을 것인가? 골키퍼 있어도 골이 들어간다고 자만하는 그의 눈 앞에 그녀가 나타나 뭐라고 말할까?

Episode 4 오디션
경험 없는 처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유진은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촌스럽고 어눌한 그녀의 몸짓은 심사위원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탈락 선언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그녀의 집념은 마지막 순간에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웃음은 기본!!


비오는 수요일,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찾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참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배우들의 노력에 비해 너무 값싸게 맛을 본듯하여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괜찮은 공연이었다.

사진출처: http://www.cyworld.com/doore2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부엉이마님 2008-08-1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단순 무식 지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