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다의 이야기
이렇게 말하면 웃길지 모르지만, 암사람 아멜다는 태어나서 16년동안 숫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본 적이 있지만 아버지를 본 적은 없었다. 자매를 본 적은 있었지만 남매를 본 적은 없다.
그것이 특별하거나 신기한 경우는 아니다. 어린 암사람과 숫사람이 나눠서 자라는 것은 비단 이 곳 팸퍼스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는 한, 세상의 모든 미성년 사람은 모두 남자와 여자가 나뉘어서 자란다. 그것이 그녀가 배운 법이며 도덕이었다.
아멜다는 태어나서 한 번도 팸퍼스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농장에 있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휘넘들은 이곳을 사육장이나 닭장이라고 부른다) 안에는 모든 편의시설이 다 있었다. 식당, 학교, 영화관, 만화방, 비디오방... 역사 이래 이만한 물질문명을 이룬 것은 처음이며, 가장 행복한 세상이라고 한다. 다만, 팸퍼스 바깥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지가 궁금할 때가 있다는 것만이 문제였다.
물론 학교에서 배운다. 팸퍼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이제 한 숫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었을 때이다. 남자 사람과의 사랑은 감미롭고 달콤하며,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텔레비젼과 비디오로만 보던 남자 사람과의 사랑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소녀들은 팸퍼스 바깥으로 나가는 나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아멜다 또한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로서 바깥 세상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팸퍼스 바깥 세계로 나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얼마나 꿈꿔왔던 바깥 세상이던가.
시간이 되자 휘넘인 팸퍼스씨가 와서, 아파트 입구에 모여있던 소녀들을 차에 태웠다. 아멜다를 포함한 꿈많은 소녀 스물 아홉 명이었다. 긴장과 흥분이 교차된 소녀들은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재잘거렸다. 팸퍼스씨는 차를 몰다가, 가끔 돌아보며 흐뭇한 얼굴로 소녀들을 쳐다보았다.
팸퍼스 씨는 샹들리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집 앞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 소녀들이 차에서 내리자, 문 앞에는 동화책에서 보던 나비넥타이 정장을 맨 급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소녀를 안내해서 드레스룸으로 이끌었다.
아멜다는 옷장에 걸린 여러 드레스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책과 영화에서만 보던, 휘넘 중에서도 부자인 휘넘만 입을 수 있는 찬란한 드레스들이 수백 벌이나 있었다.
"마음대로 골라 입으시지요. 숙녀로서의 준비가 끝나면 파티장으로 나오십시오. 신사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사라는 말에 아멜다의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멜다 뿐 아니라, 열 여덟명의 소녀는 모두 눈에서 환한 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신사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
점잖은 웨이터는 빙긋이 웃을 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웨이터가 빙긋 웃고 나가자, 아멜다와 소녀는 황급히 옷을 주워입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어보는 옷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입었는지 어떤지를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대한 노력해서 예쁘게 옷을 입었다. 비치된 화장품으로 얼굴에 화장도 했는데,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치장이 끝나자 그들은 파티 홀로 안내되어 나왔다. 감미로운 음악이 흘렀고, 연미복을 입은 신사 열 여섯 명이 싱긋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일렬로 다가와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춤을 청했다. 암사람들이 손을 내밀자 숫사람들은 손등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일어나, 능숙한 솜씨로 여자들을 리드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멜다의 파트너인 숫사람은, 키가 크고 얼굴선이 강인해보이는 사내였다. 덮수룩한 수염에서 강인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멜다는 숫사람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자기들 암사람과는 달리, 쇠처럼 강인한 가슴이었다. 춤을 추면서 와인을 몇 잔 마신 탓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맡아보는 남자의 향기 탓인지, 아멜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멜다는 문득 주위를 살펴보았다. 파티홀에 남아있는 커플은 몇 없었다. 모두 이미 별실로 안내된 모양이었다. 남아있는 커플 가운데 하나는 진한 키스를 하고 있었고, 또 어떤 커플은 숫사람이 암사람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암사람은 눈을 감고 있는데, 가끔씩 신음을 토해내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웬지 눈이 끌리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가요."
아멜다가 남자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아멜다는 그 웃음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남자가 말했다.
"어디를 가지? "
"어디... 어디론가..."
남자가 아멜다를 푹 껴안았다. 자연스럽게 껴안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팔은 아멜다가 환상적인 낭만에서 화들짝 깨어날 정도로 강하게 아멜다의 목을 조였다. 그리고 아멜다의 귓볼에 대고 말했다.
"정신차려.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아? 너희들 제삿날이야."
아멜다는 갑자기 남자의 태도가 변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남자가 하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남자는 아멜다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휘넘은 암사람 고기를 좋아해. 그것도, 젊은 암사람이 처음으로 환상적인 섹스를 하던 중에 잡은 것이 가장 맛있다고 믿고 있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어? "
아멜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휘넘이 암사람 고기를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아멜다는 휘넘 몇 명을 안다. 언제나 친절하게 생필품을 운반해주던 팸퍼스씨를 비롯해서 몇 명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친절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를 잡아먹는다고?
남자가 말했다.
"가장 비싼 사람 요리가 어떤건지 알아? 숫사람과 처음으로 결합을 하는 순간, 암사람과 숫사람을 동시에 죽이는거야. 단, 암사람의 육질이 고급인 경우에만 의미가 있지. 그리고 두 사람이 결합한 모습 그대로를 w전자렌지에 익히는 요리야. 암사람이 처음 결합이라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사타구니에는 냉동팩을 붙여놓지. 그래야 붉은 피가 익지 않으니까. 내 말 믿기 힘든 거 알아. 아무 말 하지 말고 날 따라와봐.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서는 안돼."
남자는 우악스럽게 아멜다를 이끌고는 별실 쪽으로 향했다. 아멜다는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어안이 벙벙해서 남자의 뒤를 따랐다. 별실의 조금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려는데, 문틈으로 가냘픈 소리가 새어나왔다. 역시 암사람이 신음을 내는 소리였다. 영화 속에서도 암사람은 숫사람이 몸을 만지면 꼭 저런 소리를 냈다. 앓는 소리 같으면서도 어딘지 가슴을 후비는 것 같았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곧 남자가 여자의 몸 위로 올라탔다. 이어서 침대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멜다의 얼굴이 붉어졌다. 웬지 훔쳐봐서는 안될 것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었으며, 아멜다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이었다. 천장에서 굵은 쇠기둥이 내려오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침대가 흔들리도록 들썩여댔다. 무거운 쇠막대는 남자의 등을 짓눌렀고, 그제서야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이 때 남자와 여자의 목에 거의 동시에 올가미가 씌워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올가미가 잡아당겨졌다.
암사람과 숫사람이 동시에 몸을 바둥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이 차례로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이어서 휘넘들이 뭐라곤가 하는 말이 들렸다. 휘넘들이 쓰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지만, 어감만 가지고 보자면 "한 마리 잡았다" 정도로 들렸다.
아멜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아멜다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그와 같다는 것 조차 제대로 실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끔찍함 때문에 몸을 떨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 잘 들어. 너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 뿐이야. 알아들었어?"
아멜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남자가 시키는대로라도 해야 했다. 남자는 아멜다를 껴안고 뒷문 쪽으로 나갔다. 뒷문 앞에는 나비넥타이를 맨 시종이 서있다가 정중하게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로 가십니까? 신사분과 숙녀분께서는 안쪽에 별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순간 남자의 주먹이 번개같이 시종의 목줄기를 강타했다. 꺽- 하고 신음을 토하면서 시종이 쓰러졌다. 남자는 침을 돋우어 쓰러진 시종에게 뱉었다.
"더러운 놈! 휘넘에게 붙어서 인간을 죽이는 일을 도맡아 하는, 맞아죽어서 싼 놈이지."
남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뒷문 바깥으로 나갔다. 뒷문 밖에는 아까 아멜다가 타고 왔던 자동차가 서 있었다. 남자는 거침없이 자동차 위로 올라타면서 아멜다에게 말했다.
"나는 이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아. 하지만 혼자서는 몰 수가 없어. 왜냐하면, 차를 몰기 위해서는 왼쪽에 있는 버튼과 오른쪽 끝에 있는 버튼을 동시에 누르고, 양 발로는 왼쪽과 오른쪽의 페달을 밟아야 하거든. 휘넘이라는 놈들이 덩치가 커서, 인간의 팔길이로는 안 되는 일이란 말이야. 네가 할 일은 그 쪽에 서서, 내가 시키는데로 버튼도 누르고 페달도 밟는거야. 알았어?"
아멜다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팸퍼스 안에서만 자란 그녀가 이해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복잡했다. 그렇든 말든 남자는 아멜다를 지휘해가면서 자동차의 레버를 눌렀다.
- 위이이잉--
자동차에서 소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자동차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젠장, 펄쩍펄쩍 뒤면서 페달을 힘껏 밟아."
남자는 자기도 펄쩍거리면서 아멜다에게 말했다. 아멜다가 시키는데로 뛰다가, 실수로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었다. 남자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아멜다를 다그치자, 아멜다는 간신히 시키는데로 두 개의 버튼과 페달을 다 눌렀다. 그러자 윙 소리를 내던 자동차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뒷문이 급하게 열리면서, 휘넘이 뛰어나왔다. 손에 철사와 올가미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아까 저쪽 방에서 한 쌍의 사람을 죽인, 그 휘넘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휘넘은 다름아닌... 팸퍼스였다. 팸퍼스는 앞으로 달려나가는 자동차를 보면서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거울로 그 표정을 본 남자가 "얏호" 하고 경쾌하게 괴성을 질렀다.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십분... 이십분... 창밖으로 농장과 건물들이 휙휙 스쳐갔다. 아멜다는 체중을 실어 페달을 밟으면서 동시에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남자에게 물었다.
"저기, 이거 계속 밟고 있어야 되나요? "
"마르크스라고 불러."
"마르크스씨, 이거 계속 밟고 있어야 되나요? "
"뭐라구? 너 그거 계속 밟고 있었어? 그거 놔! "
남자가 허겁지겁 말했다. 10분동안 계속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다면 도대체 지금 속력이 얼마나 된다는 이야기인지! 남자는 펄쩍펄쩍 뛰면서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굉음을 내면서 자동차의 엔진이 멎었다.
아멜다는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일이 생겼으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가속페달을 밟고 있느라 워낙 힘들어서, 온몸에 맥이 쭉 빠진 것 같았다. 차가 멎자 아멜다는 더 이상 말도 못하고, 마치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릴 듯 했다.
남자는 아멜다의 손목을 끌고 차 밖으로 내렸다. 비록 농촌의 길만을 달리기는 했지만, 이만큼 멀리 왔다면이제는 잡힐 걱정은 없을 것이다. 남자는 이미 근처의 지도를 봐두었었다. 정신이 없긴 했지만, 원래 그가 오려고 하던 곳 까지 왔다. 이곳은 휘넘의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임에 틀림없다.
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서, 주위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고 나서야 남자는 긴장이 풀려 벌러덩 쓰러졌다. 아멜다는 남자가 눕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아멜다는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아멜다는 선잠에 들었다. 그 속에서 꿈과 현실, 환상 사이를 오갔다. 아멜다는 여섯 시간 전에는 팸퍼스 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했다. 세시간 전에는 드레스를 입고 공주처럼 시중을 받으면서 춤을 췄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속에서나 보던 격렬한 사랑, 그 도중에 갑작스럽게 철사에 목이 졸려 비틀거리는 남녀... 그리고 도망자가 된 신세. 불과 반나절 사이에, 평생 겪은 일보다 더 많은 일을 겪었으니 충격을 받을 만 했다.
선잠속에서 아멜다는 다시 환상속을 헤맸다. 백마를 탄 왕자님이 그와 함께 감미로운 와인을 마시고 (왕자님이 키스를 통해 아멜다의 입속으로 넘겨주었다),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드레스를 하나씩 벗겨나갔다. 아멜다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고 생각한 순간, 강렬한 느낌이 그녀의 몸속에서 부딪혔다. 아프다기보다, 즐겁다기보다, 이물스럽다기보다....
이미 마르크스가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평생 처음 입어본 '옷' 이란 물건은 찢겨지고 벗겨진지 오래였다. 마르크스는 숨을 헐떡이며 아멜다의 몸 위에서 요동을 쳤다. 아멜다는 눈을 떴고,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붉은 방에서 봤던 두 남녀, 그 목에 걸린 올가미가 떠올랐다. 아멜다는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고함을 질렀다.
- 꺅!
마르크스의 크고 두꺼운 손이 아멜다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은 가속을 더해갔다. 아멜다의 부릅뜬 눈으로 흰자위가 몰려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