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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ㅣ 조정래 문학전집 1
조정래 지음 / 해냄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대장경이라는 소설은 조정래씨가 1975년엔가 썼다는 소설이다. 그 문제의식, 즉 <몽고가 그토록 국토를 유린하는데 대장경을 새로 만들겠다는, 그 엄청난 불사를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지극히 비민중적인 것이다> 하는 것이 정말 날카롭다. 조정래씨의 문제의식, 그리고 주제의식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아-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대장경!! 감탄하고, 애써 보존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세- 하는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생각이 아니다. 전란에 불타고 굶어죽고 찔려죽고 맞아죽고 끌려가고.... 그야말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어떻게 그런 큰 불사를 담담하게 이루었을까. 하는 문제의식은 정말로 본받아야 할 것이다.
글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크게 두갈래이다. 무신정권의 <체제 유지를 위한 방책>으로 시작되고 추진되는 불사. (추진되는 도중에 그들에게서도 불심을 확인하게 된다. 혹은 임금의 경우 처음부터 불심을 갖는다. 그러나 임금은 지극히 무기력하고 최우가 가지는 불심은 체제유지보다 앞서지 않는다.) 그리고, 민초들의 동원.
이 민초들의 동원도 단순한 <불심>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님이 중요하다. 만약 민초들이 가득한 불심으로 천지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하는 식의 묘사라면 이 소설은 시중의 그 수많은 소설들과 차별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몰려드는 민중은 혹은 가슴에 쌓인 한으로, 혹은 예술가적인 신념으로, 혹은 어차피 부초같은 놈의 인생 착한 일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그들이 단지 불심만으로 대장경을 이루어낸 것이 아님을 조정래는 그 특유의 필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조정래의 최근 작품들 - 태백산맥, 아리랑과 비교할 때 당혹스러운 점이 있다. 사람은 늙으면 순해지기 마련이라고 표현이나 사상같은 것이 부드러워지는 법인데, 태백산맥-아리랑과 비교할때 이 대장경은 훨씬 선악의 구별이 약하다.
대장경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이는?
최우 - 최초에는 정권유지에 눈이 먼 독재자의 형상이나, 이야기가 나아가면서 그에 대한 작가의 눈길은 그렇게 차갑지가 않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 불심등을 밝히면서, 가끔 잊혀질만할때 '그래봐야 그는 독재자이고 정치가이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보여줄 뿐이다.
고종 - 미련하고 어리석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눈길도 그렇게 차갑지 않다. 오히려 무능을 자탄하는 고종에게서 어떤 동정심까지도 자아내게 할 정도다.
몽고 - 악역이다. 말할 것 없이 악역이다. 사람을 죽이고, 겁탈하고, 불지르고, 끌고가는, 악역이다. 그러나 이 악역이 한번도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야기에 끼어들지는 않는다. 초반에 잠시 악행을 저지르나, 그 부분이 전체 글에서 삭제된다고 해도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무리를 주지 않는다. 단지 형식적인 악역일 뿐이다.
글쎄. 그렇다면 그 이유는, 마찬가지로 두가지쯤에서 찾아지지 않을까 한다.
첫째는 대장경이라는, 부처의 안으로 모든 것이 크게 함께 하는 세상을 그리기 위하여. 찧고 까부는 것들 모두 부처 안에 있음을 말해주는...
둘째는 조정래씨의 역사인식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예를들면 80년 광주라든지.
이 소설이, 궁중 비사 내지는 전쟁사들을 피상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달리 취급되어야 하겠으나, 불만스러웠던 것은, 그의 시선이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되는 적은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이 시대의 엘리트로서, 그 시대의 엘리트인 수기대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러면서 가끔 장균, 근필, 등의 속으로 들어가서 보기도 한다. 세사람은 분명히 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다. 태백산맥, 아리랑이 줄곧 평범한 사람들이 털어내는 이야기라는 것과 비교할 때에 확실히 연륜이 쌓이기 전 조정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