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향기 1
이인화 / 세계사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이인화의 역사소설은,
고도의 지식인 소설로 보기 드문 꼼꼼한 고증을 하면서도
여기저기에서 잔잔한 잔재미를 준다.

초원의 향기, 는 고구려 유민인 고문간이
당나라에서부터 돌궐의 유목민 사회의 대장군이 되고
그리고 한 여자 - [동방교]의 교주격인 아란두라는 여자와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단상 몇가지.
1.
적어도 이 시대를 다루면서
이만큼의 꼼꼼하고 세밀한, 치밀한 고증을 한 글을 보기는
아주 보기 드물다.
그리고 화자의 역사관에 이만큼 객관적이고 진지한 무게가 느껴지는 소설도
참 보기 드물다.

삼국시대가 배경이 되는 소설의 열 가운데에 다섯은
삼국지의 무대를 우리나라로 옮기려는, 한국판 삼국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로 쓰였다고 느꼈고 - 대륙의 한, 한삼국지...
나머지 열 가운데 셋은 고대 우리의 영광을 오늘에 되살리세, 하는 류의 경도된 민족주의가 우려되는 글들이었으며 - 잃어버린 왕국, 고구려를 위하여...
나머지 둘은, 굳이 삼국이 아니었더라도 문제가 없을 통속소설이었다 - 계백, 연개소문, 의자왕...
적어도 이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에서는 이만큼 진진한 역사적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소설이, 내 읽은 바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2.
역사학자조차 객관적 모더니티를 포기한지가 이미 오래인데
소설가이랴 오죽하랴. 결국은 받아들이는 독자의 몫이겠는데
나는 다만 이 소설의 중요한 주제 (혹은 소재)로 등장하는
[동방교] 라는 것이 어쩐지 너무 기독교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인화씨의 개인적 종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소설중에 등장하는 동방교의 여러 교리, 혹은 교리에 따른 행동들은 매우 기독교적 냄새가 풍겼다
- 마치 이문열의 대륙의 한, 을 읽으면서 상상력의 기반이 삼국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듯이, 초원의 향기의 기반은 기독교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당나라에 당시 유행하던 경교등에 관한 자료는 매우 흥미있었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작가의 어떤 편향을 보여주는 다른 자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3.
다만 쉽게 책장을 넘기기는 조금 어려운 소설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 1권 이후부터는 술렁술렁 책장을 넘기기는 했지만, - 일부러 그렇게 했지만 조금만 쉽게 써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그건 내가 쓰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

4.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부분은 실존인물이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하는 문제는
특히 동방교라는 것에 관련된 부분은 작가가 각주라는 장치로 개입해서라도 조금 가려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
다른 이에게 강하고 추천하고 싶을만한 책은 못 되었는데
그 아쉬움은 위에서 말했던 [어려움] [기독교 냄새] 등이 되겠다. 하지만 이 시대에 관심이 있고, 역사소설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도 하겠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걸걸중상의 택껸, 이가도 휘하 청성파 네 도사의 무서운 무공,
죽어도 죽지 않는 오이, 등 몇가지의 신비스런 삽화는
치밀한 고증으로 짜여진 소설속에서, 어떤 역사적 생명력을 얻는 듯 하다.

찬별.


감상문 다시 읽고서...

이 감상문을 쓰고서, 그 날 대화방에서 신나게 떠들때 누군가가 "찬별님은 역사소설 비슷한 무협소설 아니면 무협소설 비슷한 역사소설만 읽으시네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_-
그 취향은 여직 변하지 않았다. -_-
그리고 지금 '다정' 이라는 역사 소설에 관한 평론을 손보는 중이었는데, 나는 최근 일년동안 초원의 향기에 대한 감상문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이 글과 구성이 똑같다. 신기하다.
취향만 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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