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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아영엄마 > 직업, 이런 점이 궁금하다!
알쏭달쏭 직업 이야기 51 - 초등학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김한준 지음, 박혜선 그림 / 을파소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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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초등학생때만 해도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통령이나, 의사, 과학자, 선생님이 되겠다는 막연하면서도 의례적인 답변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보면 미래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분야가 명확하고 뚜렷한 것 같다. 그렇긴 해도 특정 직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여 궁금해 하는 점이 많을텐데 이 책은 그 중에서 51가지의 질문을 뽑아 친절한 답변과 관련 지식들을 첨가해 들려주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관련된 직업인 프로게이머.. 과연 게임만 열심히 한다고 될 수 있을까?  놀이로 여겨지는 게임이지만 이것을 직업으로 가지게 되면 그것은 분명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직업이 된다.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때로는 밤샘을 해가며 몇시간씩 연습을 해야 하고,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부를 얻는 선수가 되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프로게이머가 아닌, 게임과 관련 직업된 직업을 언급한 코너도 있으니 눈여겨 보시길... 목차를 죽~ 살펴보면 흥미롭고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이 있다. "도둑보다 달리기가 느리면 경찰이 될 수 없나요?", "소방관은 불이 안 나면 그냥 쉬고 있나요?", "탐험가는 위험한 곳만 다녀야 하나요?", "남자만 가질 수 있는 직업도 있나요?" 등등 다양한 질문들이 실려 있다.

 마지막 질문이 "직업이 없어도 걱정할 것 없는 나라가 있나요?"인데 나도 궁금해서 얼른 찾아 보았다. 국가에서 실업급여를 지급해 주고 학비까지 무료라니 당장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직업을 갖는 이유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지 않은가!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나 성취감,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도 생소한 몇몇 직업과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도 이 책을 통해 직업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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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두 광고쟁이의 탁월한 합작
어느 카피라이터와 아티스트의 시선
박웅현 지음, 박규호 사진 / 예문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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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2003년 12월 31일. 지금으로부터 1년 조금 넘는 그때, 한해를 마감하는 시기였다. 당시 군에 있던 이 몸은 함께 휴가 나온 다른 동생과 함께 종로와 인사동 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31일에 휴가 나온게 어디냐만은 우리네 두 몸이 머물 곳은 없었고, 쓸쓸히 서로를 위안하며 코드가 맞는 두 사람은 그 길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한 아트센터에서 전시회가 진행중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나아트센터였다)무료다. 돈없는 우리는 무료라는 말에 예술작품 좀 감상해볼까 하고 들어갔다. 진짜 공짜인가보다? 하고 전시회장을 벽을 따라 쭉 돌아보며 작품을 감상했다. 익숙치 않은 풍경. 난 미술작품 전시회는 가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깐.

 그곳 전시회장에선 전시회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책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공짜로 들어왔지만 사진이 좋아  각자 책을 한권씩 구입했다. 이 책이 그 책이다. 12,000원이라는 값을 지불했다. 공짜로 전시회를 구경했지만 결국 그 사진들을 소유하고픈 마음에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전시회가 공짜인 것은 그것을 유도하는 것일게다.

 <어느 카피라이터와 아티스트의 시선>이라는 그럴듯한 책 제목. 그것은 지금껏 광고만 찍고 광고 카피문구만 만들던 두 사람이 모여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어온 여행사진과 문장의 조합이었다.

 디렉터 박웅현은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경의선은 경제입니다" "잘자, 내 꿈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와 같은 문구를 만들었고, 부업으로 아시아퍼시픽 광고제, 깐느 광고제 심사위원과 몇몇 국제 광고대회 초청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단다.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사람이다.

 더불어 아트디렉터 박규호는 'KTF적인 생각' 캠페인, 맥심카푸치노 캠페인, 모토로라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날개' 등을 만들었고, 몇몇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다. 역시 이 사람도 잘 나가는 사람이다.

 두 잘나가는 광고쟁이가 모여서 일상적인 여행 사진에 의미심장한 문구를 덧붙임으로써 작품을 만든 것이다. 사전에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여행길에 찍어둔 사진에 글을 붙이고 그래서 그냥 놀이로 작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직업을 또다른 놀이로 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은 참 부럽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사람, 그 일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 일을 즐기는 사람은 그에게 그것은 일이자 취미이다. 그들의 작업은 활기차다. 그들에게 놀이인 것이 사람들에겐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일반인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이 요새는 많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글 몇 줄 담아내는 연습을 하다보면 이와 같은 작품은 누구나 도전할만하다. 나도 이 전시회를 보면서 언젠가 한번 이런 작품 만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그 언젠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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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가다가 아니면 돌아오는 것이 젊음 아닌가.

오늘, 그동안 실습겸 코칭을 서로 주고 받고 했던 부장님과의 코칭을 일단락 지었다. 부장님이 너무 바빠 보여서 계속 붙들고 있기가 뭐했다.

이 분하고는 근 두달 정도 코칭을 했나 보다. 부장님의 전공은 커리어 코칭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코칭으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시고, 이것 때문에 노동부에서 하는 <한국기술 교육 대학>이라는 곳에서 진로 상담 대학원 과정을 밟고 계신다. 방학인데도 특강 들으랴, 모 헤드 헌터 회사에서 커리어 코칭하랴 눈코 뜰새 없으신가 보다.

그동안 부장님으로부터 이 분야에 대한 정보다 많이 얻고 도전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재대로된 진로 교육이나 상담없이 대학을 진학하고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낭비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방황하는 인력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랍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재대로만 진로 선택만 해도 우리나라 산업이 흔들림이 없이 잘 발전할 수 있을 텐데. 기업체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배속되야 하는지도 몰라 헤메고 있으니 우리나라 산업기반은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유수한 대학의 대학생들이 학습 불능에 빠진 사람이 예상외로 많다고 한다. 그들은 주입식 교육에만 길들여져서 어떻게 하면 주도적으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또한 대학을 두번 들어가는 사람도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재대로된 진로 상담이나 교육이 뒷바침이 되지 않아서라고 하니,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모든 게 너무도 커 보인다.

어느 분야든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어서, 이 분야를 얘기하면 너무 크게 와닿고, 저 분야를 얘기하면 그 분야 역시 너무 크게 와닿는다. 어느 것도 소홀함이 없이 중요하고 유기적이 될 수 밨에 없을 것이다.

물론 부장님하고 코칭을 마무리 졌다고 아주 안 할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침 다른 사람하고의 코칭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에 굳이 바쁘신 분을 붙들고 계속 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그다지 마음 편한 일은 아닌 것이다.

나는 일차 마무리를 지으면서 부장님께 충고를 부탁했다. 근데 나는 그저 예의상 몇마디 하시려니 했는데 부장님은 끝까지 나에게 도전을 주신다.

"우리가 암치료의 권위자를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이 우리나라 또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그런 권위만을 보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격었겠나를 생각해 보길 바래요. 그것처럼 스텔라님도 미리부터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를 생각하지 말고  일단 많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코칭을 많이해서 나빠졌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 코칭이니 조급히 생각하지 마시고,  무조건 많이하십시오."참 고마우신 말씀이었다.

 그래. 어설픈 실력이라도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것이 좋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지금 잘하는가 못하는가를 따진다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찾기 인지도 모른다. 들어주는 자세와 질문하려는 자세만으로도 코치의 자질은 충분하다고 한다.

오늘은 세 사람에게 코칭을 했다. 그중 그래도 맨 마지막에 했던 코칭이 그나마 마음에 든다. 우리는 낄낄대고 웃으며 했으니까. 나의 코칭 상대는 원래 좀 재미있는 캐릭터라 웃으며 코칭하는 게 가능했지만, 코칭을 심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웃었다고 해서 엉터리였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과 맞닦뜨려줬더니 더 이상 안했으면 하고 쥐구멍을 판다.

"아냐. 너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리는 것을 회피하지마. 오히려 잘된거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다행히도 이 친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잘 따라와줬고 사안도 그다지 큰덩어리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영어강사로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좋아하는 일을 두고도 여전히 자신은 뭘했으면 좋을런지를 몰라한다. 너무 먼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게 천직 아닌가?

그래도 섣불리 이거라고 코치가 해답을 주면 안된다. 이를 메시징이라고 하긴 하는데 꼭 나쁜 것마는 아니다. 코치가 이것을 얘기해서 상대가 받아드려도 그만이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영어강사가 너의 천직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유능한 강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 봐라. 유능한 강사가 되어서 만족스러우면 그게 너의 일이고, 아니라면 길은 그때 또 다시 찾으면 된다. 요는 목표나 목적없이 길을 떠나는 것보다 잘못된 길이 될지라도 일단은  그것없이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일단 수긍은 한다.

나 역시도 코칭을 계속하긴 할거지만 부장님처럼 커리어 코칭은 안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분야는 라이프쪽이 될것 같다. 그것도 심리쪽. 원래 공부하기도 그랬고 오늘 이 친구와도 코칭을 할 때 이 친구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지 배가 아프고 설사도 한단다. 그 부분에 질문해줬을 때 나 나름의 쾌감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분야가 내 분야인지도 모른다. 아님 말구.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지, "가다가 아니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젊음이" 아니냐구.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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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H.C.브레송과 문화강국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 - 카이로스의 시선으로 본 세기의 순간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정진국 옮김 / 까치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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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어떤 사실의 의미와, 그 사실을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가리키는 형태의 엄격한 구성이 한순간에 동시에 인지되는 것이다.

- < Image a la Sauvette> 중에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한 아이가 물구나무를 서는 풍경을 연출하기에 세상에는 더 그럴싸한 곳이 많다. 까르띠에-브레송의 카메라는 이 순간을 잡아냄으로써 조금 전까지 더없이 익숙했던 세계를 갑자기 의문의 미궁 속으로 빠뜨린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집 속에는 이런 무수한 순간들이 꼼짝없이 포획되어 있다. 어쩌면 까르띠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들은 오히려 사진에 대한 내 절망조차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사진을 위해 평생 동안 지불해 온 인내와 몰입과 결행을 따라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선망과 동경의 뒤안 어느 지점에서 아끼는 라이카의 그립을 다잡아 쥘 생각조차 버린 것은 아니다." (교수신문 2003년 6월 23일)라고 말한다. 

사진 하는 이들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자 언젠가 뛰어넘고 말리라는 거친 결심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브레송의 사진집이 국내에서 출간되는, 어찌보면 출판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어째서 이런 일이 사건이라고 불리워져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출판업계가 취급하고 있는 문화분야에서 사진은 특히나 낙후된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극, 무용에 비해서는 조금 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진과 관련한 출판물들을 일람해보면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사진 분야의 책들은 사진작가의 것이라기 보다는 사진기 혹은 사진술에 대한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손쉽게 카메라 다루는 법을 익히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들과 핸드폰만큼이나(아니 요새는 아예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디지탈 카메라의 대중화로 인해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더이상 특정한 기술을 연마한 포토그래퍼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카메라의 대중화가 곧바로 사진의 대중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출판물들의 현황을 통해 다시 한 번 살필 수 있다. 사진은 미술의 판화와 더불어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장르 중에서 가장 손쉽게 대중과 친숙해질 수 있는 저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작가들의 작품집은 대형서점의 외국 서적 코너나 수입물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된 까닭에는 사진작품집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반사항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수요가 있어야 할 것이고, 사진 인쇄물이 원판 사진과 근사치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쇄의 질과 감수 과정이 필요하며, 용지를 비롯한 여러가지 제반 비용이 활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 서적류보다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 결과 이 책 역시 80,000원에 이르는 고가의 책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이 책의 질과 의미를 생각해보고, 국내 출판사의 노력을 통해 출판되지 않았을 경우 들어가야 할 독자의 노력과 수고,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에게 인터넷은 무용지물이듯, 외국어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 외국책 역시 무용지물이다) 이 가격도 결코 비싼 액수는 아니다. 이 책은 모두 400여 페이지에 이르며, 거의 대부분을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과 관련된 이미지, 텍스트, 개인사 및 기념물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가 편집하고, 이탈리아에서 인쇄. 제본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대회고전을 기념하여 세계 십여개국에서 동시에 출판되는 하나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사진이란 예술을 통해 철학(哲學)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명의 고승이 숱한 선승, 학승들에게 영향을 주듯 후대의 많은 사진 작가들에게 있어 숱한 영감과 감화를 준 위대한 사상가의 풍모마저 보인다. 물론 그것은 그가 어떤 말이나 글로 이것들을 전했다기 보다는 사진 작업들을 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사진 기자이기도 했다.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등과 함께 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을 창시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공공재를 생산해내기 위해 상하수도를 놓고, 저수지를 보존하는데 적지않은 비용을 들인다. 또한 정부는 보다 많은 산업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혹은 IT강국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지식인"과 같은 쓸모없는 이벤트에 비용을 들인다. 우리는 영화를 예술이 아닌 산업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이런 류의 출판물과 기획물을 기획하는 출판사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보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사람들은 문화산업의 컨텐츠를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착각하곤 한다. 모든 문화산업, 모든 컨텐츠 더 나아가 문화의 기본은 사실 책이다. 그 기본을 튼튼히 하기 위해 정부와 우리 사회는 출판사들과 이런 류의 도서들을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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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05-07-1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문화산업, 모든 컨텐츠 더 나아가 문화의 기본은 사실 책이다."밑줄 좍.
 
 전출처 : 바람구두 > 잡지쟁이의 동지적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여행하는 나무 imagepress 1
이미지프레스 글.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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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쟁이의 동지적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이렇게 제목을 뽑아놓고 보니 다소 거창하다. 그리고 어딘가 80년대 풍이다. 위의 말들을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한 마디로 촌스럽다고 하는 거다. 촌스럽다는 말이 의미하는 게 무얼까?  '시대착오적'이란 말을 듣기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레 탈바꿈시켜 놓은 말일 게다. 언제부터 도시와 촌락이 구별되고, 도시에 비해 촌락이 뒤처진 시대착오적인 공간이 되었을까? 거기엔 아마도 "근대성(modernity)"의 문제가 깊이 개입되어 있을 게다. 근대의 도시 풍경들이 빚어낸 악마같은 소비욕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부(재력)이다. 근대화된 도시의 시민들이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부자되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도태된 이들, 그들이 바로 근대의 풍경으로부터 소외된 촌락민들의 운명이었다.

촌스럽다는 말엔 그런 인물들에 대한 조소가 깃들어 있다. 여기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어서 촌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웹진 "이미지 프레스(http://www.imagepress.net)"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7년간 인터넷이란 온라인 공간에서 3년간 마당 청소하고, 다시 3년간 빨래하고, 1년간 밥 짓는 악전고투 끝에 하산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들에게 내민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 전문 무크지 "여행하는 나무 - imagepress vol. 01, landscape"이다. 인터넷 공간에 웹진의 형태로 출범한지 어느새 7년이나 되었던가? 이미지 프레스의 편집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의 "책을 펴내며"를 읽는 심정은 마치 제갈 공명의 출사표를 읽는 듯 비장하기 그지 없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비장하게 만들었는가.

<이미지프레스>를 창간했던 1999년을 전후한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사진 이미지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이 실리던 시사 주.월간지는 수만 부씩의 발행부수를 자랑했고, 많은 사외보가 사진가들의 든든한 '밥줄'이 되어 주었습니다. 거기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미지프레스> 같은 웹진과 사진가들의 홈페이지들이 속속 등장해, 다큐멘터리 사진의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전환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005년 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 잡지 <지오>가 폐간되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여전히 잘 나가는데?"하실지 모르지만, 편집권이 없는 한국판 <내셔널 지오그래픽>과는 달리 국내 사진가들과의 활발한 교유를 통해 좋은 작품들을 게재해 온 <지오>의 폐간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본문 4-5쪽>

과연 그랬다. <지오>의 폐간 소식은 월간 <키노>의 폐간 소식 못지 않게 충격이었다. 잡지와 단행본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천재"와 "평범"한 학생 100명의 차이와 같다. 뛰어난 단행본은 우연히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으나, 잡지는 천재 한 명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 100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를 뛰어난 천재 한 명에게 의지한다고 치자. 그 결과는 한국 스포츠가 지난 독재 체제 아래에서 엘리트 스포츠 위주로 흘러왔던 것과 흡사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실제로 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없는데,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국제 무대에 나가 인정받는 것 말이다.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한 권의 잡지엔 수많은 이들이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지오>에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게재하는 방식으로 이 잡지와 관계를 맺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최소한 한 두명은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비록 시작은 평범하였으나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작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키노>와 <지오>의 폐간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한 잡지의 실패,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영화비평가들, 다양한 이론들, 대중과의 소통, 사진작가들, 사진 작품들, 그들이 빚어낸 독특한 사진의 풍경들이 일시에 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잡지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현단계 문화 수준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매체이다. 두 잡지의 퇴출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문화 저변이 넓어졌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란 점이다. 영화잡지 <키노>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던 시기에, 사진잡지 <지오>는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카메라 바람과 더불어 외국의 유명 작가는 물론 국내 사진 작가들의 품격있는 전시회가 성공리에 개최되던 시기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이토록 비장한 발간사를 준비한 것이 아닐까? "새로운 진지전"을 위해 이들은 새로운 참호 하나를 파고 있다. 스스로 말하길... "그 참호 안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또다른 폭탄을 맞고 장렬히 산화(?)할지는 독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자! 이제 책을 시작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십시오."라며 발간사를 정리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기동전을 펼치던 사진가들이 장렬히 산화한 뒤, 21세기 현재의 사진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무크 이미지프레스>는 "여행하는 나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유목민과 농경민의 시선을 결합해보고자 하는 시도일까? '참호'란 진지전을 펼치기엔 너무 불편하고, 승기를 잡아 치고 나가야 할 때는 발목을 잡는다며 짐짓 충고 한 마디 던지려던 찰나에 다시 발견한 부제를 보니 그런 충고를 던졌다간 단단히 창피 받을 각오를 해야할 듯 싶다. 이들은 이미 다 계산해두고 있었던 거다. 이번 무크지의 테마는 "풍경(風景 , landscape)"이다. 한자로든, 영어로든 흘낏 바라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풍경이란 궁극적으론 뿌리없는 자의 시선, 바로 바람의 시선이다.

그러나 사진가의 시선에 붙들린 풍경은 젤라틴 실버프린트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종종 더 좋은 기록 매체들이 속속 출현하는 현실 속에서 사진이란 기록 매체의 미래가 암담하단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사진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을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찾는다. 카메라의 렌즈 저 너머의 대상은 그저 고정된, 혹은 흘러가는 대상이 아니라 카메라 뷰파인더의 시선과 눈을 맞추고 있는 대상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진가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렌즈를 통해 대화하는 자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담긴 대상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아낸 자를 함께 바라본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매체였다.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엔 오랫동안 카메라가 포착해낸 대상이 실재한 대상이란 사실을 꾹꾹 새겨 놓는다. 즉, 사진 인화지에 담긴 풍경은 현존했던 것이란 말이다. 지금은 소멸되었을지라도...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이고,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명이 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여행하는 나무"는 바로 그런 시선에 대한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잡지의 이번 특집은 최근 국내에서 전시되고 있는 <'결정적 순간'의 대가 앙리 카르티에 - 브레송을 추모하며>가 아니라 양수겸장(兩手兼將)으로 포진해 있는 <우리의 풍경> 그리고 <아시아의 풍경>이다. "여행하는 나무의 생각하는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잡지를 전달받고 그날 중으로 다 읽고, 다시 또 읽었다. 물론, 현재의 내게서 이 잡지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나오기 힘들다. 그 까닭은 이 잡지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확보할 만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문제들은 지적하고 싶다.(물론, 이런 지적들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 잘 알고 있다.) 우선 판형의 문제이다. 물론 일반 단행본에 비해 다소 큰 판형이긴 하지만 사진을 주요 콘텐츠로 삼는 책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다소 작다. 다음의 문제는 지질의 문제인데, 무크지인 만큼 시간에 구애를 덜 받는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각각의 사진에 어울릴 만한 다양한 지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광택지의 사용 문제와 지질의 색깔 등도 적절히 안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진이 본래의 빛깔을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현재에도 물론 인쇄의 질을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인쇄 상태가 좀 더 좋아져야만 한다는 건,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보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도발 혹은 반동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 바란다.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불행히도 우리들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 참호 안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또다른 폭탄을 맞고 장렬히 산화(?)할지는 독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가 이니겠는가. 종종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뒤적이며 <매그넘> 사진 작가들의 이름을 줄줄이 암송할 수 있는 지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네들이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흘러가는 시간을 포착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말은 알량한 민족적 자존심이나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먼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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