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06-04-21


'서부전선 이상없다' '분노의 포도' '호밀밭의 파수꾼' '앵무새 죽이기'….
세계 문학사를 빛낸 걸작이라는 것 말고도 이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갖은 수난 을 겪었다는 점이다.
반전문학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독일작가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보자. 이 책은 발간된 지 2년 만인 1930년 독일에서 판매가 금지됐다. '조국과 민족의 이 상을 훼손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1933년 5월에는 4만명의 베를린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2만5000부가 불태워졌다. 뮌헨에서 열린 또 다른 화형식에는 어린이들까지 가세했다. 작가는 결국 망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책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거역하는 문구가 들어 있고 인생을 비참하게 묘사했다'(분노의 포도), '내용이 비윤리적이고 음탕하며 공산주의적 사상을 띠고 있다'(호밀밭의 파수꾼), '깜둥이라는 단어가 인종차별을 고착화한다'(앵무새 죽이 기)는 이유로 출간을 거절당하고 압수당했으며, 쓰레기차 앞에서 전시되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작가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악마의 시'를 쓴 살만 루시디는 19 89년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슬람 종교 칙령인 '파트와'를 통해 사형선고를 내려 아직까지도 영국 비밀정보국의 24시간 보호에 의존하고 있다.
'100권의 금서'는 이 같은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한마디로 '금지된 책의 문화사 '쯤 된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서 소설 '닥터 지바고'까지, 정치적ㆍ종교적ㆍ 성적ㆍ사회적 이유로 금지되거나 탄압받았던 책 100권을 골라 그 내용과 수난의 역 사를 소개하고 있다.
소설, 역사서, 전기, 아동서, 종교 논문, 철학 논문, 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선정 된 책 가운데는 법적으로 금지된 것도 많지만 대부분이 '좀 더 넓은 의미의' 탄압 을 받았던 책들이다. 교과과정에서 삭제되거나, 도서관에 비치되지 못하거나, 교회 에서 비난받거나, 출판사에서 거절 또는 삭제당하거나, 법정에 끌려가거나, 작가가 제 손으로 고쳐 써야 했던 것.
작품마다 꼼꼼하게 소개되는 수난의 역사는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 문화적 환경을 엿보게 해 준다.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돼왔던 탄압의 역사도 확인할 수 있게 해준 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부기관과 사회단체, 학교위원회, 종교 맹신주의자들이 자유롭 게 읽고 쓸 권리를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지용과 홍명희가 월북 문 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80년대 중반까지 그들의 작품을 접할 수 없었다. '태백산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로도 모자라 저자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 했다.
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시대의 억압에 항거하는 작가와 출판 인들의 노고는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예담 펴냄 .
[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