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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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작품이 반세기 전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명곡은  언제 들어도 늘 새롭다고들 하는데, 파계재판이 바로 그런 명곡들 같은 책이지 않나 싶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오래된 냄세가 나지 않는다. 

 

작가이자 판사인 '도진기'씨가 '실제에 가깝고 법적 오류가 전혀 없다'고 평을 한 법정장면은 매끄러우면서도 시종 긴장감이 흐른다. 무대가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라 자칫 단조로워 질 법도 하지만, 다양한 증인들의 증언이 매번 새로운 드라마가 되어 독자들을 자극한다.

 

아쉬움이 있다면 독자는 그저 방청객일 뿐이라는 점. 정황증거가 주어지지 않으니 이따금 탄성을 터뜨리것 외에 읽는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 이와 관련해 언급할 것이 있는데, 바로 작가가 후기에 쓴 글이다.

 

-'가드너'의 소설들은 대부분 전반이 사건 자체의 기술이고 후반이 법정 장면으로 채워진다. 그것이 법정소설의 정석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는 있지만 자신은 그것을 깨뜨려보고 싶다'-

 

결국 '추리'라는 부분에서의 약점을 인정하고 '소설'의 미덕을 살리고 싶었나보다. 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서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순식간에 읽히는 작품이지만 남는 파장은 의외로 오래갈 수도 있다는 것.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가가 몇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국내에 -정식으로- 거의 소개가 됬지만, '얼 스탠리 가드너'만 아직 '동서'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다. 양지로 끌어내어 주실 그 분께 미리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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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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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란 표현에 트라우마가 생기기 시작한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중도에 포기하고 나서였다. 책 초반 주인공인듯한 수도사 두명이, 돌아가는 높은 산길을 힘겹게 걸어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겐 이책을 읽는 행위가 마치 그들의 그런 고행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후, 비슷한 느낌의 카피가 실린 책들은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독서를 학습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풍토에 대한 어줍짢은 반감도 있었고, 책은 그저 TV나 영화처럼 현실로부터의 도피수단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줄리언 웰즈의 죄'는 사실 그래서 매우 어렵게(?) 집어든 책이었다. 이전에 읽었던 이 작가의 다른책에 대한 서평이나 커버 안쪽에 실린 작가 소개를 읽으며 '아,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책 한권이 끝나고나면 '다음은 어떤걸로 할까?' 늘 고민하는 것이 지겨워, 올초에 세운 '무조건 신간부터 읽자.'라는 계획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이책은 대기순서에서도 한참 뒤로 밀렸을 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친구였던 줄리언의 이유없는 자살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고 극 초반을 지배하는 -게다가 웬지 모르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모호한 분위기. 사실, 이때만 해도 괜히 시작했다 싶었다. 그나마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가 계속 책을 붙드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은 주인공 필립과 줄리언이 아르헨티나를 여행할 당시에 있었던 일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시점부터.

그 '사건'의 언급 이후 작품은 본격적으로 '미스테리'라는 장르적 특성의 궤도 안으로 들어온다. 극적 긴장감을 서서히 높이면서. 줄리언의 자살이 그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감지한 필립이, 그가 죽기전 여행했던 곳을 따라가며 사건의 중심에 조금씩 다가서는 전개는 숱한 미스테리 영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한 형태. 하지만 이 익숙한 분위기와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체과 어우러져 '줄리언 웰즈의 죄'는 굉장히 신비로운 글이 되어간다.

결말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여타 작품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다른 작품들이 직접적인 내상을 입히는 형태의 파괴력을 가졌다면 이 책의 반전은 외상에 의한 후유증 공격으로 독자들을 시달리게 할 것 같다. 한동안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이 한마디와 함께. '진실은 멀리 있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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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쿠쿠스 콜링 세트 - 전2권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1
로버트 갤브레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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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파이바닥…’을 읽을 때도 비슷했었지만, 영국식 유머는 -귀로 듣지 않고- 글로(그것도 번역된 글로) 읽을 땐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

작가가 캐릭터 구축을 위해 기울인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들의 이미지가 여전히 희미한 건 불쑥불쑥 끼어드는 낯설은 비유때문. 이 때문인지 집중력에도 허점이 생겨 한참을 읽었는데도 사건의 개요가 명확하지 않은 느낌.

그리고 사건수사가 제법 진행이 됐지만 주인공 ‘코모란’의 ‘중간 브리핑’이 한번도 없었다. 메인 히어로가 이렇게 ‘독고다이’로 움직이면 나같은 ‘의존형’ 독자들은 슬슬 짜증이 나면서 무기력해진다. 아직 1권이고 게다가 ‘미스테리’는 처음이니 여기까지만.

 

2권 종료. 1권 내내 따라다녔던 -어른인지 아이인지- 선명하지 않은 캐릭터들로 인해 생기는 위화감은 갈등이 고조되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옅어지지만,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느낌.

특히 그 어줍짢은 ‘욕’의 번역은 다음 시리즈에선 어떻게 좀 됐으면 하는 마음. “씨발 모른다고, 나 담배 한 대 좀 실례해도 될까?”는 몇번을 곱씹어 봐도 어색.

아직 서투른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코모란 스트라이크’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는 건, 해리포터 1편 ‘마법사의 돌’이 비교적 미약했으나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나아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기때문.

그나저나 당대 최고의 작가가 작심하고 미스테리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은 그저 부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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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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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왜 내로라하는 영미 스릴러들에 그토록 시큰둥해 했었는 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해야 할말에 안해도 될말까지 설명이 너무 많다는 것. 장황한 배경 묘사에 꼼꼼한 인물 묘사, 거기다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의 늘어지는 심리묘사까지. 책을 읽는다는게 적어도 나에게는 작가의 텍스트를 가지고 나만의 세계를 그려 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을 작가에게 뺏기고(?)나니 나는 그저 무료함을 느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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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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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이야기 하는건 아니지만 ‘뮤직 비디오’ 한편을 언급한 것 만으로도 기밀 누설이 될 수 있을 것 같기에 책을 보시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읽으시지 않을 것을 권장합니다.



가끔 새 책 구경하러 들르곤 했는데 오늘 처음 용기를 내어 글을 올려봅니다. 워낙에 쟁쟁하신 분들 앞이라 꼭, 학창 시절 수학 여행 갔다 오던 길에 산 기념품을 부모님 앞에 슬그머니 내어 놓는 기분입니다.

이 책에 대한 품평을 쭈욱 훑어보니(죄송합니다.) 대체로 유쾌한 반전이었다는 글이 많았지만 사기라고 주장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결말이 도덕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기라고 덮어씌우기엔 책의 저자가 군데군데 널어놓은 힌트가 너무 묵직해 보입니다. 그 중에 하나만 집요하게 파고 들어도 - 당근 결과론이지만 - 어렴풋하게 작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너무 한심하더군요. ㅋㅋ

결국 또 반전이야기지만, 제가 남은 150여페이지의 끝을 보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맥주 한 캔 덕에 머릿속이 알딸딸한 상태였습니다. 열심히 속도를 내어 페이지를 넘기다 어느 순간 작가가 불쑥 내민 조커를 받아든 순간 몸속을 휘휘 돌아다니던 알콜 기운이 확 사라졌습니다. ‘어?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되묻기를 약 5초 ‘뭐야? 번역이 잘못 된거야?’하고 의심하기를 5초. 결국 실실 웃으며 나머지 쪽수를 더 빠른 속도로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장을 덮은 뒤 문득, 제법 오래전 채널 ‘v’에서 본 뮤직 비디오 한편이 생각났습니다. 그룹 ‘프로디지’의 [스맥 마이 비치 업] -영어가 짧아서 -.-;;…- 아침 잠에서 막 깨 부시시한 상태에서 봤는데 ‘거울’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한동안 꼼짝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누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밌으니 한번 읽어 보라고 -이런 장르와 별로 친하지 않은- 아무개에게 줬더니 다 보고나서는 ‘황당했다.’라며 불쾌해 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은 추켜세우면서도 추리 소설에서 사용되는 비슷한 부류의 결말을 깔보는 분들을 보게 되면 괜히 기분이 나빠 집니다. 제가 보기엔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이 더 치사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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