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Expert in Murder: A Josephine Tey Mystery (Paperback)
Nicola Upson / Perennial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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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입니다. 물론 ‘트릭’의 경이로움이 그 첫 번째 이유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범인의 의외성에서 기인한- 결말부분의 공포감은 또 다른 의미에서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포와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손발이 움찔움찔하고 뒷덜미가 서늘하다 못해 오싹해졌던 그 때의 분위기는 아직까지 그 어떤 추리소설이나 공포영화를 통해서도 다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혹은 사건에 관련된 용의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다 놓고 탐정이 진행하는 범죄의 재구성을 훔쳐보는 이런 식의 결말은 어찌 보면 독자들에게 단순히 미덕이고 혹은 그저 보너스일 수도 있겠지만, 트릭 자체보다는 그 트릭의 기발함에서 파생되는 음흉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 즐겼던 저에게는 종종 사건의 복잡함 때문에 느끼게 되는 자괴감(?)과 더불어 살인사건 사이의 공백에서 오는 지루함을, 기나긴 고행(?)뒤에 얻게 될 짜릿한 결말을 누리기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로 여기게 만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이런 면에서 제가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유형의 작품은 전혀 엉뚱한 곳 또는 엉뚱한 사람에 의해서 사건의 전모가 일종의 선전포고도 없이 순식간에 밝혀지는 그런 책들입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An Expert in Murder’ 역시 그런 작품들 중의 하나입니다.

추리소설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표지 그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이 아니면 생각하긴 힘든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산지가 거의 1년이 다되었지만 그 동안 애써 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영어가 조금 더 늘기를 기다렸던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이 ‘본격’일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본격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트릭을 쫓아가는 것은 늘 힘들었기에 모자라는 영어로 좋은 작품을 망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보다 ‘왜’라는 쪽에 좀더 기운 결말은 제 지나친 기대와 달리 허탈(?)하게 끝나긴 했어도 –연극무대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193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시대적 배경은 ‘아가사 크리스티’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겐 충분히 어필할 만한 장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도입부분을 약간 지난 지점에서, 사건과 관련될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디테일 하게 묘사하며 독자의 환기를 유도하는 장면은 역시 추리소설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매력인 것 같습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Angel with Two Faces’, 02/2009, UK)이 트릭의 까다로움을 좀더 발전시킨 것이 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작가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성에 더 중점을 두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과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추리소설 독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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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불야성 시리즈 1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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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남자들 세계에서의 ‘서열’이란게 대체로 이 권력의 의해서 매겨지게 되거든요. 권력은 크게 세개의 형태로 부터 나오게 되는데, 일단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물리적인 ‘힘’이 그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주먹으로 ‘짱’ 먹는 애가 그냥 ‘보스’가 되는거죠. 하지만 얘네들이 사회로 나오게 되면 그 ‘힘’은 위력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돈’ 과 ‘감투’가 대신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린 이 중 하나를 가졌지만 다른 하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 최고이던 물리적 힘은 -이젠 순서가 바뀌어- 가끔 이 부정행위들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구요. …사설이 길었군요.ㅎㅎ (꼰대같이 굴었다면 죄송합니다. ㅠㅠ)

 

<불야성>의 주인공인 ‘류젠이’는’돈’도 없고 ‘감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쌈질’을 엄청 잘하느냐 하면 딱히 뭐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잘난 ‘머리’ 하나로 정글의 세계에서 교묘하게(?) 버텨나갑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그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먹고 사느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때론 통쾌해 하면서요.  <영웅본색>에서의 ‘소마’ 역시 모든 남자들이 한 번쯤 꿈꾸는 영웅이었지요. 하지만 <불야성>의 ‘류젠이’와의 차이가 있다면, ‘소마’가 밝은 ‘지킬박사’요, ‘류젠이’는 어두운 ‘하이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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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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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3인칭이었을까?"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의 전개나 구조상 주인공격인 ‘순스케’를 ‘나’로 하는 1인칭 시점이 더 어울려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1인칭 시점의 글쓰기가 훨씬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벅찬감동이 있어 나로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 담당 편집자 ‘나혁진’님의 코멘트를 단순한 애사심 차원의 홍보용 멘트가 아닌 진심어린 독후감이라고 인정하고, 이 작품의 옮긴이가 후기에서 밝힌 ‘이 작품은 ‘입시지옥’ ‘스와핑’ ‘가정붕괴’등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3인칭이 아닌 1인칭을 썼더라면 그 효과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데도 개인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됐네요.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만들었는데, 초반의 정밀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사람의 마음까지도, 젓어까지도 투영되는 듯한 영화더군요. 막판이 너무 설교적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경계에 있는 추리소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굳이 추리기법 차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위 글은 ‘김봉석’님께서 ‘비평과 칼럼’란에 실린 ‘임석원’님의 같은 책에 대한 비평글에 다신 답글 입니다.(이런식으로 빌려온 것이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 밑줄친 부분을 보면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이 소설이 어떤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반대로 ‘김봉석’님은 그 영화의 막판 ‘설교’가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전 이 답글을 읽고 나름대로 가졌던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추측이란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전 그 어떤 감동도 느끼질 못했고 그 어떤 사회적 메세지도 전달 받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입시경쟁이니 가정파괴니 하는 모든 것이 그저 결말의 극적 반전까지 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로 밖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일본에선 굉장히 뛰어난 운동선수가 나왔을 때 ‘괴물’이란 애칭(?)을 붙여주는 걸 가끔씩 보아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와는 처음 이지만 웬지 그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 &lt;호숫가 살인사건&gt;은 마치 유아용 스케치북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밑그림만 그려져 있고 거기에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스케치북 말입니다 . “그건 어느 소설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물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통의 소설들은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지 이 작품처럼 고의로 독자의 자의적 해석을 유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전 3인칭 시점이 1인칭이나 전지적 시점에 비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제한 된다는 점에서 추리장르의 소설쓰기에 훨씬 더 적합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독자가, 작품속 사건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대해 주인공이나 작가의 개입을 덜 받게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쓰기 편한 1인칭 대신 3인칭 시점을 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신기했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 배경이 되는 장소의 그림이나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올져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인지 아니면 구질구질한 부연설명을 보태지 않고 독자의 상상력에 맡겼기 때문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원래 쓰려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아래에는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의 결말에 대한 ‘고자질’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신 분들께서만 스크롤바를 내리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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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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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lt;호숫가 살인사건&gt;을 읽고나서 올린 글에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괴물’이란 수식어와 잘 어울릴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결하면서도 마치 공중 줄타기를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대화를 통해 표현해낸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너무나 비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도입부 장면입니다. 주차장에 도착한 주인공 순스케가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가는 도중 따로 마련된 테니스 코트에서 그의 아내와 아내가 멤버로 가입되어 있는 클럽 회원들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까지의 짧은 부분의 묘사만을 통해 작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는데 필요한 음습함과 불온함을 단번에 획득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래서 &lt;게임의 이름은 유괴&gt;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시점이 1인칭이다 보니 흥미진진한 인물들간 대화가 줄어든 것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좀 산만한것 같기도 하고 웬지 짜임새가 없다는 느낌도 들었고 결말을 읽은 뒤 되짚어 보면 트릭 자체도 좀 엉성한것 같고 여하튼 - 워낙 잘 읽히는 소설이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화장실 갈 때랑 밥먹을 때 빼고는 궁둥이를 떼지 않고 끝을 냈지만 - ‘괴물’ 이야기를 괜히 했나? 싶은 후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경현’님의 비평글을 읽었습니다.

여기 밑엔 작품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책을 읽을 읽으신 분들 께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위의 글만 읽고 작품에 대한 편견이 생기면 안되는데…-.-;;)









"확실히 읽으면서도 수상한 장면들이 역시 음모의 진행 과정임이 밝혀집니다. 그렇게 용의주도한 주인공이 왜 그걸 의심을 안 했을까요. 감상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시신에 그렇게 조작을 한다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텐데 잠깐 자동차 바깥에 서 있던 것만으로 그게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뭐 따지고 들면 이런 것이 여럿 걸리긴 하지만…"

이 부분이었습니다. 뭔가가 머리에서 번쩍했습니다. 왜? ‘순스케’는 ‘가쓰라기 주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까? 너무 쉽게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그렇게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람이 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제게.

간단했습니다. ‘사쿠마 순스케’가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전 위의 글에서 웬지 트릭이 엉성한 것 같다고 했는데요, 만약 여성 독자가 이 작품을 꼼꼼히 읽어내려 갔다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너무나 분명한 헛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생각이 떠오를 때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완벽주의 ‘순스케’가, 자신이 ‘가쓰라기’ 사장 첩의 딸이며 어릴적 생모에게서 길러지다 부모가 죽고 홀로 남자, 사장이 데려왔다고 이야기한 ‘주리’의 말을 아무런 의심없이 곧이 곧대로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순스케’의 직업이나 인맥을 살펴보면 그 정도의 사실 확인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어딘가 모르게 개운치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틀어버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 자체가 아예 도루묵이 되니까요.

아마도, 작가는 주인공 ‘순스케’가 여자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걸 독자에게 심어줄 필요가 꼭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순스케’의 행동이나 생각에 독자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죠. 적어도 상대하는 여성에 관한 ‘순스케’의 장악능력(?)에 관해서 만큼은…

이 책의 도입부는 그래서 교묘합니다. 작품 전체를 놓고봤을 때 ‘결혼이란 말을 꺼냈다고 해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여성을 단번에 내쳐버리는’ 이 부분은 ‘순스케’ 성격의 한 단면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진 않습니다. 그야말로 독자의 눈을 멀게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 셈이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전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에게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괴물작가. 책 제목 은 ‘순스케’와 ‘가쓰라기’가 벌이는 게임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진 선전포고 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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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 뫼비우스 서재
존 하트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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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올해도 가을이 왔습니다. 저는 가을을 무척 타는 편입니다. 나이가  들고 삶에 찌들면 그런 감정들도 조금씩 무디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고독을 달래려 오래전 구매해  두었던 <라이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지금 전 ‘자살’이란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작년 가을 롯데  자이언츠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던 날 밤, 그래서 3년을 사랑했던 로이스터 감독과의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예감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 밤, 아내가 마치 오랫동안 준비하고 작심한 듯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 단어를  말입니다.


아내가 TV 드라마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힐 때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늘 놀리면서도, 저 역시 막상 이런  작품을 대할 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작가의 글이 독자들의 보편적 감성을 깊은 곳까지 잘 파고든 것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저 제 코드가 이 작가와 잘 들어맞은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저에겐, 바깥에선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집에선 폭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내몰린 1인칭 주인공 ‘워크’의 생각이나 움직임이  너무 절절하게 와 닿았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사전에 충분한 복선 없이 전혀 뜻밖의 곳에서 밀어닥친 결말인데, 사실 이  갑작스런(?) 마무리조차 전 억지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작품의 그 어느 완벽한 결말보다 더 믿을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홈즈’를 좋아하다 <노란방의 비밀>로 본격적으로 입문한 뒤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10대를 보냈지만 어쩐지 전  추리소설하면 ‘챈들러’의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만약 추리소설이란 장르에 ‘본격’만이 허용되었다면 여름을 제외한 다른  계절엔 뭔가 다른 읽을거리를 찾아 헤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이어>를 끝내고 집어든 책은 ‘기리노 나쓰오’여사의  <물의 잠 재의 꿈>, 그리고 다음 라인업은 제목마저 을씨년스러운 <지하에서 부는 서늘한 바람>입니다.  秋리소설이 있어 행복한 가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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