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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0 - 제3부 불신의 시대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전 남한 산성의 성곽 이십리를 밟아보는 산행을 하였다. 서문으로 해서 북문을 거쳐가는데 제법 높은 산자락 위로 한강이 유유하게 보였다.(홍수주의보를 거둔지 얼마 안된 시점이어서 정지된 미사리쪽의 한강은 황토색의 장대한 모습이었다.) 서울생활이 얼마안된 나로서는 한강의 몇몇 다리를 건너보기는 하였지만 한눈에 한강을 조망하기는 처음이었다.
마침 조정래의 '한강'을 읽고 있던 참이라서 한강에 대한 관심이 더 깊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자연으로서의 한강과 책제목으로 갖는 한강의 이미지는 무척 다르며 현대사의 중심부엔 한강이 있다. '태백산맥'으로부터 '아리랑'을 거쳐 '한강'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20년의 긴 기간동안 치열하게 집필을 하였고, 나는 십오륙년동안 읽기의 긴 끈을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처음 '태백산맥'을 읽을 때 느꼈던 전라도의 징한 방언들과 짠한 마음의 감동은 '한강'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염상진이나 소화에 비하여 유일민과 임채옥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치열함이 덜하였다. 아마도 시대의 흐름(1980년대와 이천년대의 차이)과 이데올로기의 공존이 불가능하였던 우리 현대사의 공간이 구속하는 억압이 컸기 때문이리라.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다 녹아있으면서도 소시민의 일상의 생활을 지배하는 편린들을 바라보는 맛은 현대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배가시켰다.(평화시장의 전태일 열사와 활빈당의 김진홍목사의 삶은 각각의 수기나 소설을 통해서 볼때 치열함과 감동이 굽이치는데 반해 이 소설에서는 현대사의 정신사적 몫을 차지하는 정도, 그래서 나는 서사적인 느낌을 짙게 받았다.)
저자는 현대를 '분단의 강화 속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한 시대'라고 표현하였다. '오늘의 경제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아래서는 수많은 우리들이 고통스러운 몸부림으로 서로 뒤엉키며 거대한 기둥들이 되어 떠받쳐 왔음을 본다. 그 기둥들은 고통과 아픔과 외로움과 눈물이 점철된 거대한 인간의 탑이다. 그건 숨김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그 노역들은 단순히 윤택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 땅의 비극을 풀 열쇠가 될수도 있음을 감지케 하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을 각권을 펼칠 때마다 읽으면서 생각을 하였다. 적어도 열번 이상 읽었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민족의 과제는 '민주와 통일'이라고 배웠다. 민주사회의 구현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만나게 하고 정치적, 경제적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당연히 분배의 문제를 첨예하게 가져온다.
평화적 통일국가의 실현 역시 서로 다른 체제에 대한 상호인정과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체제가 북한보다 물리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 통일을 염원하는가? 진정 유일표가 꿈꾸는 세상은 가능한가?
억눌린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통해 밝음이나 꿈보다는 어둡고 실망스런 부분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 소설은 현대사의 실상을 분명하게 반영하는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나는 개개의 삶을 민족과 사회적 삶으로 치환할 수 있도록 행위할 수 있는 것인지....' 소설을 다 읽고도 잘 모르겠다. 나를 희생하고 대의를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마음, 여전히 내 자식에게는 잘 해줄수 없어야 타인을 위한 열림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2002년에도 동일하다.
세계화의 시대에 민족에 대해 지니고 있던 나의 냉소적인 가벼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수민족이 지닌 민족주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보기도 하였다. 나는 세밀하게는 못하더라도 서사적으로 표현된 여러 구성 인물들을 정리작업을 통해 다시 만나며 생각하는 작업을 지속하고자 한다.
자식에게 '태백산맥'을 베끼기를 요구한 작가의 당당함을 사랑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민족과 세계에 확장되는 태도를 아울러 존경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가에 꽂아놓고 보면서 틈나는 대로 빼어 읽고 또 생각하고 행동하는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