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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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어떤 이로 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신부가 있는데, 자신의 무덤에 가지고 가고 싶은 세권의 책은 성서와 노자와 동방견문록이라고 했다는..."

  동방견문록은 어쩌면 만화로 혹은 어린이 탐독서로 더 많이 친숙한 책이 아니었을까?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구박을 받으면서 대출해 읽은 김호동 역의 동방견문록은 완역본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미 열려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상황과 관점을 생각해본다면, 매력적인 글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자신의 견문을 감정과 흥분을 배제한채 객관적인 기록을 남기듯 바라본 마르코 폴로의 서술방식은 마음에 들었다. 오늘날의 지명과 대조하면서 주를 자주 찾아보아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한 인물이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필했을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슬금슬금 읽어가면서, 남은 분량의 두꺼운 책장을 계속 넘겨보면서 지겹도록 읽어냈음이 스스로 장하다.

  한때 전세계를 장악할 만큼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의 잊혀지고 있는 몽고와 그 제국의 역사를 생각해볼때 그리고 우리와 밀접한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임을 생각해볼때 깊은 관심과 지속성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학자의 수고가 고개 숙여진다. 책의 첫머리에 그려진 마르코 폴로의 세계를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다 읽고 나서도 그 신부님은 허구많은 책중에서 왜 동방견문록을 선택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 사람이 바라본 넓은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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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과 세상 - 김훈의 詩이야기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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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훈의 글 같지 않은 글을 본 느낌 - 사실 그렇다. 김 훈의 책이라서 골랐는데, 낯설고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시를 논하는 것도 그렇고 날카로움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없는 느낌, 좀 밋밋하고 느슨한 감이 풀어져버린 듯한, 읽다보니 첫 작품을 재편집하였다고 한다. 첫작품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시라서 그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를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을 하였고, 좋은 작가와의 만남을 이런 저런 각도에서 이어가는 것도 괜찮을 듯한 느낌으로도 위안을 얻었다. 아직도 읽지 못한 글들 몇편, 천천히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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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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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바라본 허균은 광해군 때의 허균이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적 삶의 모습인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기억과 자료를 가로지르며 삶을 탐험하는 소설가 김탁환'이란 소개와 불멸의 이순신을 드라마 속에서 소개받으면서 새로운 작가를 주목해 보게 되었다. 그는 작가후기에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가 이 소설의 화두라고 하였다. 그가 그린 허균이나 광해군 그리고 이이첨은 인조반정후 모두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설명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성공했던 서인세력이 바라보는 구체제의 인물군 중에서 성공적인 지식인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대외문제나 현실인식이 치열하지 못했던 서인세력이 성공적인 지식인인가 하고 묻는다면 역시 긍정적 답을 확실하게 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지식인이란 성공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존재인가? 동서양을 넘나들며 만나게 되는 성공한 혹은 패배했더라도 그 몫과 가치를 빛내고 있는 실천적 지식인들을 알고 있는 우리들의 답변은 그렇게 회의적일 수만은 없다.

  무릇 역사소설은 그 시점의 자유로움을 누리되 역사성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 김탁환의 "허균, 최후의 19일"은 관념속에서만 놀고 있던 허균을 만나게 되어 미진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식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아울러 그가 누리고자 했던 사회가 평등성과 공화정의 모습을 띠고 있다면 광해군의 가까이서 이이첨과 함께 정치를 했던 광해의 정치성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많은 모순점을 띠고 있어 독후감을 쓰기가 매우 망설여지는 책이었다. 나는 작가 후기를 옮겨 적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김탁환에 대해서도, 그리고 허균에 대해서도 좀더 정보와 지식을 얻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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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한양진경 - 북악에 올라 청계천 오간수문 바라보니, 양장본
최완수 지음 / 동아일보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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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조선의 미술을 말하라면, 나는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듯 진짜 경치를 그리는 새로운 학풍인 줄 알았었다. "금강전도"를 보면서도 그런 나의 생각이 오류라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하기야 금강산을 가본 적도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본적도 없으니 당연한 지도 모른다만, 책을 통해서 조감법에 의해 바라보는 시각임을 알면서 나의 관찰력과 상상력에 무리가 많은 것을 얼마나 한탄하면서 자책을 하였던지..."

  겸재의 한양진경은 서울의 옛 모습을 바라보는 멋이 담겨있다. 서울시민으로 이름만 걸어놓고 주말에나 왔다갔다 하면서 사는 나의 삶을 생각한다면 서울의 어느 구석인들 제대로 알고 있을까마는 그래도 내 발로 걸어보면서 서울을 밟고 느끼고 생각하고 싶은 나의 욕구가 산들을 밟아보게 하고 한강변의 길들을 걷게하고 겸재가 보았던 하늘과 강과 언덕을 생각해보게 한다. 최소한 이름으로라도 낯설지 않음을 감사하면서 송파나루가 석촌호수인 것을 의아해 하고 삼전도비가 육지 한가운데 턱하니 서있는 것도 갸웃거리게 만들었던 것인데 흐름을 돌려놓고 매립이 되면서 신천동이 생기고 주류의 하나였던 송파나루는 호수의 흔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울 하면 한강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들을 빼놓고도 서울을 생각할 수가 없다. 겸재의 그림에서는 그런 산들과 한강의 물결들이 속속들이 그려지고 생명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 한장 한장 넘겨보녀서 더구나 최완수님의 글을 통해 사실적 접근을 하면서 얻어볼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북악에 올라 청계천 오간수문 바라보니..." 나는 청계천 공사가 완공이 되어야 겨우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지만, 현대화된 서울일 망정 그 흔적을 애써 찾아가면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내 눈엔 무엇이 들어올는지 나는 알지 못하나 서울 사랑의 흔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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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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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 한없이 넓고 크며 둥글둥글한 깊은 산을 다녀왔다. 백두대간을 밟아본 적도 없이 늘 꿈만 꾸다가 그 작은 시작을 해보고 나니 지리산을 제대로 알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그래서 시작한 일의 하나가 태백산맥을 다시 읽는 작업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가면서 전라도의 방언이 가져다주는 질기고도 징한 맛을 몸서리칠만큼 느꼈던 기억도 잠시이고, 많은 인물들에 둘러싸여서 처음과는 다른 맛을 가지고 읽어갔다. 하루에 한권씩 읽어대도 열흘이나 걸린 여정- 하기사 열흘만 걸렸을까? 조금씩 정리를 시작한 것이 20여쪽의 분량을 정리했으니 거의 보름정도의 시간을 공들여 쌓은 여정이 있었다.

  내 기억과는 달리 지리산에 대한 정보는 남부군이나 이병주의 지리산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태백산맥이란 제목에서 보여지듯 지리산은 마지막으로 가는 종결의 장이었고, 지리산 하면 떠오르는 이현상과 남부군은 이 소설의 중심인물들이 아니었다. 염상진, 하대치, 외서댁, 손승호, 김범준, 김범우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민족과 해방을 위해 힘쓰다 스러져간 민초들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가면서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어느 한 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선택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며 자기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삶이 합당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쉬운 선택과 행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분단상황이라고 하지만 21세기를 지향하는 이 시점에서까지 어느 한쪽만이 옳다는 고집을 부린다면 이는 민족분단을 고착화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한편은 정의이고 다른 쪽은 틀렸다는 근시안적 생각에서 벗어나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서로 다른 방법들이었음을 인식하고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그리고 민족은 그 모든 것들에 우선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역사상에 함께 움직여 드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논란은 많았지만 우리 시대에 이런 소설을 연작으로 쓸 수 있는 작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흐뭇하다. 민족의 역량이 커지고 자란 것으로 생각이 들며 획일적인 사고와 가치척도로 부터 일탈하여 다양성을 그리고 통합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젊은 시절을 살아내는 필독서처럼만 일회적으로 읽지 말고 두고 두고 새겨보면서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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