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도해본 가족여행이다. 다섯 형제가 큰 오빠가 사는 제주도로 날아갔다.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비행장을 선택해 서울, 청주, 군산 등에서 각자 날아들었다. 도착 시간이 다르듯 떠나는 시간도 다 달랐다. 때문에 이박삼일의 여정 속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시간이 둘째날인데 그날은 한라산 등반으로 계획되었다. 스무명이나 되는 가족들은 세차례로 나누어서 성판악 코스를 밟게 되었다. 7시 20분부터  10시 20분까지 정말 다양한 출발시간이었다.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한라산 꼭대기에서 만나 부둥켜 안고 서로가 즐거워 사진으로 함성으로 혹은 한숨으로도 공유하였다. 백록담의 물은 아주 조금 밖에 안남았었지만 노루가 와서 마시고 가곤 했다. 날씨는 쾌청, 그 흔하다는 안개 한자락도 구경할 수 없는 정말 축복받은 날이다.

  오후 두시 반 - 하산을 재촉하는 소리에 가족들은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면서 구상나무군을 바라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한라산의 절경에 사진도 찍어가면서 정말 한가하게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성판악코스보다 짧으니까 서너시간이면 당연히 내려오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산은 내 머릿속에서 처럼 움직여 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도가도 별로 줄지않는 길과 그에 힘들어하는 살찐 재성인 걸음이 둔해지고 35kg가 넘는다는 몸무게때문에 업어줄 생각도 못하고 쉬엄쉬엄 내려오는데 3km를 남기고 해가 꼴딱 꼴딱 넘어가려 하는 것을 보았다. 난 외출로 나온 규일일 보려는 욕심에서 달려나왔고 우리보다 1.5km쯤 앞선 동생네를 따라잡아 대신 부탁하고 어린 아이들을 인도해냈다. 아주 캄캄해진 산길에 손전등하나도 없이 뒤쳐진 여섯명의 우리 가족들, 거의 구출의 역사를 진행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합심해서 무사히 내려왔다.  아니 무사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다리를 접지른 환자도 한 사람 나왔으니.... 진한 가족애를 느꼈다. 쪼리를 신고 재성일 찾아 뛰어간 큰 오빠와 막내 영환, 재성이가 나오는 걸 보면서 무조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터졌고. 랜턴을 주기위해 뛰는 나는 땀이 비오듯 한다는 체험을 생생히 하였다.

  덕분에 예약되었던 횟집에는 거의 세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식구들이 띠엄 띠엄 도착했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가 결속될 수 있음을 느낀 정말 값진 체험이었고, 산은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음을 절대적으로 깨달았다. 아무리 밋밋하다 해도 한라산 18km의 길이는 하루동안 잠깐 거닐 거리는 분명 아니었다. 한라산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하, 한라산 - 가장 힘들었던 재성인 한라산을 뿌셔 버리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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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송도영의 서울읽기
송도영 지음 / 소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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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나 미래에 대한 어떤 예측보다도 현재를 진단하는 것은 어려운 듯 하다. 우리가 흔히 체험하고 공간을 나누는 장을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유효했다. 어렵지 않고 쉬운 듯 하면서도 생각을 해주게 한다는 점에서 고등학생들이 즐겨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흔히들 사회학에 관련된 책이나 이론들은 너무 어려워서 해석조차도 곤란한 경우가 많은데,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참 매력을 느꼈다.

  제1부는 스피드로 오늘날의 사회적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테마였고 강남, 지하철, 방문화, 코엑스몰, 예식장 등 흔히 우리가 피부로 접하는 장소 혹은 이슈들 속에서 생각할 거리를 찾아내고 정리해주어 기발함을 느끼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제 2부는 스쳐가는 역사로 스러지는 옛 서울의 기억을 추억하며 가회동 한옥마을을 안타까워했고 서울의 전원형 식민지 양평군에 대한 소개나 현대산업의 산 역사로 청계천 공구상가를 1-2로 나누어 살펴본 것은 서로 다른 시각들을 가지고 진행되는 문제들을 다양하게 접근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의 여지가 많아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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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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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세기에 보여진 인물 중에서 최고로 사랑에 자유로왔던 여인, 미실을 소설로 읽다. 화랑세기는 사놓고도 채 읽지를 못하였는데, 소설은 굼벵이 같은 속도로 나마 다 읽었다. 성애를 마음껏 구가한 여인으로의 삶에 대해 꽤 괜찮은 평들을 해놓았는데, 나는 좀 찝찝한 느낌을 떨굴 수 없었다. 내가 유교적인 울타리에 갇혀있는 것인가 하는 자문도 해보면서 뭔가 좀 ..... 그랬다.

  미실이 만난 숱한 남자들은 신라 사회의 귀족층 혹은 왕족으로 있는 최고의 지배자군이다. 진흥제 때를 전후해서 그려진 점으로 보아 신라가 발흥하고 있었던 때이고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힘쓰는 때이라 현세적 성격의 불교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 자못 의심스럽다. 왕이 전륜왕이라 하는 것은 왕권강화에 불교를 이용한 느낌이 들지 현실속에서 극락을 꿈꾸는 중대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미실은 성애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눈에 띄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유혹하고 성교하고 주체할 수 없는 성에 몸을 떨면서 혹은 최고의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권력의 한복판에 버티어 서고자 온갖 권모술수를 부릴 줄도 알고, 나중에는 득도하고 인생의 지고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진평왕에게 성의 바른 모습들을 가르치고 인생을 수용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배경을 흐르는 사상은 불교와 도교와 유교의 모습도 다 배어 있어 혼돈을 주게 한다. 이를 테면 문노와 윤궁은 유교적 이상이 배어있는 생활태도로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고, 미실을 주로 감싸고 있는 가치는 불교적이며 가끔은 도가적 태도가 무늬져 있다. 성애를 최고의 가치로 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가끔은 도발적인 몰락을 배우면서 그가 말년에 가진 것은 허물어진, 늙고 추해진 성의 모습이 아니라 인생의 참 가치를 알아낸 도인의 모습이 된 것 -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세인의 질시와 추앙을 함께 받았다 치더라도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성의 자유이거나 아니면 참고 견디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미실은 그 둘을 다 가질 수 있을까? 생뚱맞다.

  난 오히려 사랑의 모습을 사다함이나 세종 혹은 아들인 하종의 모습에서 아름답게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을 한 사람에게 오롯이 부어주면서 인생의 가치를 한 줄기로 세우는 모습들을 일관성있게 보여준 특징이 있다. 아마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몫을 넘어선 때문에 난 미실을 보면서 역사적 인물이기 보다는 문학적 인물처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일평생 만난 사랑의 대상이 아무리 많았다 하더라도 한번 사랑은 한 사람씩 정성껏 하고 그 사랑이 문을 닫고 난 뒤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었더라면,,,, 색공을 받드는 위치에서 왕과의 사랑과 자신의 자유로운 사랑이 갈등하는 모습이 정신적인 방황으로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좀 허무한 느낌이 적었을 것 같다.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건진 인물을 문학적 상상력을 재치있게 발휘한 소설이란 생각이 줄곧 들었다. 여전히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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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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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수업시간에 교과서 외의 책을 얹어 가지고 다닌다. 어느 날 이 책을 가지고 갔더니만,  한 학생이 "선생님, 혹시 "나는 달린다"의 짝퉁....?"하고 묻는다.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간단히 소개를 해주었다.

  채 다 읽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 기자출신의 노인(61세)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은퇴후 4년여에 걸쳐 실크로드를 발로 꼭꼭 걸어간 이야기라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보는 부러움의 하나는 유럽인이기 때문에 전시 하나 다름없었던 아나톨리아 평원(터어키 등지)을 여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꿈도 꾸어보지 못한 길이지만, 가까이에서 이런 꿈을 꾸었던 지인의 소개와 선물로 이책을 읽게 되면서 저자의 느림의 철학을, 그리고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서 솔직하게 대면하는 외로움과 고적함을 행간에서 읽어내면서 나는 지리산 종주의 꿈을 꾸었다.

  대부분은 대학생시절이나 청년시절에 실현했던 지리산 종주를 나는 그 시절엔 꿈도 꾸지 못하였었다. 40대를 훌쩍 넘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들어서야 비로소 여유를 갖고 좋은 등산 용품을 하나하나 구입하면서 꿈을 꿀수 있었다. "겸허함으로"라는 모토를 걸고 2박3일의 산행을 계획하고 70이 넘으신 친정아버지와 동행하였다. 아버지와 단 둘의 여행으로는 처음이었고, 비가 오리라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산을 좋아하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경험자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배낭을 꾸리면서 지고가는 짐의 무게가 겁나기도 하였고 초행길의 산등성을 왼종일 걸으면서 숙박에 대한 불안감도 많았지만,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가까이 보이는 한그루 한그루의 나무나 풀들을 정겹게 바라보고 - 원추리랑 산나리랑 그밖의 이름모를 산풀들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게도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 비가 개이면 끔찍이도 아름다운 산하를 바라보면서 내 강산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걸 느꼈다. 비를 맞으면서 날씨를 탓하기보다는 덥지 않아서 물을 조금만 준비해도 좋아서 그리고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등등의 좋은 이유를 달고 또 예정보다는 많이 어그러졌지만 무사히 종주를 마친데 대한 자긍심과 기쁨이 절로 넘쳤다. 연로하신중에도 무사히 마치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기쁨도 또한 컸다. 그리고 마지막 밤을 보낸 장터목 산장에서 밤하늘에 쏟아졌던 수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담아보고 북두칠성 넘어 우뚝 솟아있을 천왕봉을 우러르며 일출을 기대했던 순간과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넘어 헉헉대면서도 천왕봉에 올라 여명의 기운을 바라보고 해오름에 탄성을 질렀던 기억들이 어느새 아스라하다. 나는 무슨 선행을 했길래 우중에도 명료하고 장엄한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까? 높은 산 정상의 바위 한 쪽을 차지하고는 마치 호수위의 한 섬에 앉은 듯한 착각 속에서 무한한 여유를 느껴본다. 주변에서는 통일의 노래도 들려오고 또 윤도현의 노래도 들려온다. 입술을 들먹이면서 함께 합창하고,  "추위쯤이야.... 뭐...." 하면서도 사실은 준비를 잘 해 가지고 간 겨울 옷을 입고 앉아 흐뭇해 하였다. ㅋㅋ

  중산리로 내려오면서 연하봉을 식별한 기쁨 그리고 그 너머에 있을 영신봉과 촛대봉 그 사이의 세석평전을 그려보았다. 진주까지 택시로 나가서 다시 하동으로, 구례로 또 노고단 아래 성삼재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찾아가지고 나오면서 종주할 때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되새겨 보았다. 나와 만나고 나의 숨은 능력들을 신뢰하고 오로지 두 발과 두 팔로 살아간 건강한 2박 3일의 짧은 시간들이지만 무수히 많은 길들과 열려진 세계를 향한 마음이 실크로드를 연결하고 또 세계 일주도 꿈꿔보는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일상성에 신선함과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이 기쁨을 나는 또 언제쯤 맛볼 수 있었을까?  함께 종주하려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못가게 되었던 동생 내외는 지리산의 정기라도 쏘인다고 계곡을 찾아들어 발 담그고 노고단까지는 올랐다고 한다. 돌개바람을 만나서 꼼짝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내려왔노라던 동생은 다음번엔 꼭 함께 가자 한다. 물론 좋다고 응수하였고....

  동생에게 이 책을 권해야 되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지혜가운데 침묵이나 혹은 단순한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롭게 전하는 이야기가 듬뿍 담긴 책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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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보충수업의 둘째날이 저물고 있다. 오전중에 5교시의 수업이 타이트하게 진행되고 아이들은 방학이래야 방학식날 좀 일찍 끝난 것 이외엔 아무런 변화도 없이 자신의 보충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거의 없이 습관적으로 나와 함께 떠들고 수다를 튼다.

  "너희들이 보충해야 할 것이 수다나 낮잠이나 먹는거가 결코 아니다."라고 핏대를 올리면서 이야기를 해봐도 가슴을 열지 않으니 잔소리에 불과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도전을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은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지치지 않게 라는 자그마한 목표를 정해놓고 아이들에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십대의 나이란 정말 무모할 만큼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운동 이틀째, 작년엔 참 많은 선생님들이 모여서 체육관을 북적거리게 만들었는데 이년째되니 운동도 시들하다. 더위를 혹은 방학동안의 여러 계획들을 내세우면서 모여지지 않는 선생님들 때문에 운동이 안될 것은 없다만, 그래도 단둘이 지치도록 하는 것보다는 운동을 우선순위로 내세우면서 모여졌으면 좋겠다. 절대로 욕심을 부리면서 너무 심한 운동을 하지 않기. 둘째날이라 오늘은 어제보다는 훨씬 낫겠지! 어깨는 여전히 뻐근하고 다리도 근육이 뭉쳐들어 자다가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다. 잘 풀고 자야겠다.

  책은 나의 생활가운데 저만치서 자리잡고 있다. 완상용같은 느낌 - 서너권의 책들을 섞어 읽어가면서 어느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천천히, 더 천천히... 그것도 가끔은 괜찮은 느낌이 든다.

  일단은 '빨리 빨리'라는 속도로부터 좀 자유롭다는 것이 방학이 가져온 뚜렷한 변화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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