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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화랑세기에 보여진 인물 중에서 최고로 사랑에 자유로왔던 여인, 미실을 소설로 읽다. 화랑세기는 사놓고도 채 읽지를 못하였는데, 소설은 굼벵이 같은 속도로 나마 다 읽었다. 성애를 마음껏 구가한 여인으로의 삶에 대해 꽤 괜찮은 평들을 해놓았는데, 나는 좀 찝찝한 느낌을 떨굴 수 없었다. 내가 유교적인 울타리에 갇혀있는 것인가 하는 자문도 해보면서 뭔가 좀 ..... 그랬다.
미실이 만난 숱한 남자들은 신라 사회의 귀족층 혹은 왕족으로 있는 최고의 지배자군이다. 진흥제 때를 전후해서 그려진 점으로 보아 신라가 발흥하고 있었던 때이고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힘쓰는 때이라 현세적 성격의 불교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 자못 의심스럽다. 왕이 전륜왕이라 하는 것은 왕권강화에 불교를 이용한 느낌이 들지 현실속에서 극락을 꿈꾸는 중대의 모습과는 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미실은 성애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눈에 띄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유혹하고 성교하고 주체할 수 없는 성에 몸을 떨면서 혹은 최고의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권력의 한복판에 버티어 서고자 온갖 권모술수를 부릴 줄도 알고, 나중에는 득도하고 인생의 지고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진평왕에게 성의 바른 모습들을 가르치고 인생을 수용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배경을 흐르는 사상은 불교와 도교와 유교의 모습도 다 배어 있어 혼돈을 주게 한다. 이를 테면 문노와 윤궁은 유교적 이상이 배어있는 생활태도로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고, 미실을 주로 감싸고 있는 가치는 불교적이며 가끔은 도가적 태도가 무늬져 있다. 성애를 최고의 가치로 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가끔은 도발적인 몰락을 배우면서 그가 말년에 가진 것은 허물어진, 늙고 추해진 성의 모습이 아니라 인생의 참 가치를 알아낸 도인의 모습이 된 것 -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세인의 질시와 추앙을 함께 받았다 치더라도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성의 자유이거나 아니면 참고 견디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미실은 그 둘을 다 가질 수 있을까? 생뚱맞다.
난 오히려 사랑의 모습을 사다함이나 세종 혹은 아들인 하종의 모습에서 아름답게 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을 한 사람에게 오롯이 부어주면서 인생의 가치를 한 줄기로 세우는 모습들을 일관성있게 보여준 특징이 있다. 아마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몫을 넘어선 때문에 난 미실을 보면서 역사적 인물이기 보다는 문학적 인물처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일평생 만난 사랑의 대상이 아무리 많았다 하더라도 한번 사랑은 한 사람씩 정성껏 하고 그 사랑이 문을 닫고 난 뒤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었더라면,,,, 색공을 받드는 위치에서 왕과의 사랑과 자신의 자유로운 사랑이 갈등하는 모습이 정신적인 방황으로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좀 허무한 느낌이 적었을 것 같다.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건진 인물을 문학적 상상력을 재치있게 발휘한 소설이란 생각이 줄곧 들었다. 여전히 찝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