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진이 1
홍석중 지음 / 대훈닷컴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내 나름으로 기획한 '2005 가을 나기의 황진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덮다. 세 종류의 소설 책들이 모두 다른 각도를 가지고 있어서 황진이란 16세기의 한 여성을 조명해 보는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자아을 찾아가는 서경덕의 제자로서의 인간, 황진이를 그린 "나, 황진이"나 여성성을 토대로 황진이의 모든 것을 욕심껏 표현코자 했던 전경린의 소설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관계없이 말이다. 그런 중에도 홍석중의 "황진이"는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양반집 딸로서의 황진이가 가슴에 품었던 자유분방함과 학문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감성이 강한 느낌들이 곳곳에 배여있는 한편 놈이의 눈먼 사랑이 정혼한 윤승지댁에 출생의 비밀을 토해내게 되고 그로 인해 황진사의 딸 진이는 기생으로서의 명월이의 삶을 선택하고 남성중심의 사회에 대한 조악한 조소와 비웃기를 한다. 이로인해 政治性까지 확보하는 상상은 작가가 그려낸 황진이의 이미지 중 하나란 생각이 든다.
홍석중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북한에서 쓰여진 소설이기에 단어의 낯설음이 눈을 어지럽혔다. '지어는'은 '심지어는', ' 리해, 리별, 련정' 등 두음화가 안된 많은 단어들을 '이해, 이별, 연정' 등으로 읽어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에서 사용되는 단어들과 한자어, 고사숙어 등의 여러가지 어휘가 감칠 맛을 돋구어 주었다. 어휘풀이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보통 소설에서 맛보지 못하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혹 개짐의 뜻을 아시나요? 여성이 월경할 때 샅에 차는 물건이라고 1권 323쪽 '어휘풀이'에 적혀있네요. 생리대보다 훨씬 멋지죠???)
둘째, 황진과 황진의 상대가 되었던 양반들을 중심으로 그려지기 쉬운 구도를 가지고 민중들의 삶과 생활을 감칠맛나게 그려낸 점이다. 놈이나 괴똥이 이금이와 할머니 그리고 청루에 몸담고 있던 인물들의 모습이 진솔하게 그려지며 활력을 갖게한다.
세째, 16세기란 역사적 상황에 대한 상상과 관찰을 가져오게 하는 점이다. 사림들의 중앙정계 진출로 인해 훈구세력과의 부단한 갈들이 숨쉬던 정국, 그로 인해 성리학의 이상세계 속에 안주하지 못하고 도교나 다른 종교에 기웃거려 보던 많은 성리학자들의 한숨 - 물론 그 한숨이 후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훨씬 많은 읽을 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직은 유교적 틀에 정형화되지 않았기에 고려시대의 자유스럽던 여성들처럼 보여지는 자그마한 몸짓과 자유분방한 생각들 - 현재와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현재적 시각이 많이 배여있음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있다. 소설이면서 소설스럽지 않은 느낌, 무엇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 하나하나에 대해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게 하는 것은.... 벽초 홍명희의 손자가 쓴 책이라서 일까, 순전히 내 개인적 취향의 발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