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2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여섯 장으로 구성된 전경린의 황진이1,2 소설에서는 여성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온몸으로부터 뿜어내는 고혹적인 향기며 눈에 띄게 예쁘진 않으나 한번 눈길을 주면 도저히 뗄 수 없는 매력과 압도하는 힘에 누구나 눌려버리게 된다는 잦은 표현들은 말로나 가능한 것이리라.  사람의 행위와 사고의 그늘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나 느낌이 아닌, 생래적인 교태랄까 그런 것을 뿜어내는 사람이 있을까? 원래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진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당당하게 선택하고 온몸으로 살아낸 완성인으로 그려졌다.

  김탁환의 "나, 황진이"에 이어 시리즈 - 물론 내가 구성한 시리지이지만 - 두번째를 차지한 이 소설은 부재한 생모에 대한 그리움과 가야금이나 시 등의 예술로 찾아가는 어머니와의 화해의 길이 아름답고 자유롭게 묘사되어 있지만, 읽는 나로서는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길러준 엄마의 정성과 헌신 속에는 아버지와 생모의 사랑을 갈라놓으려는 칼같은 냉정함이 있다든지 친부의 냉정함 속에는 자신의 사랑을 잃게 만든 원인제공자로서의 미움이 새겨진 탓이라든지, 이사종과 한양 3년의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낮추고 시집 식구들에게 기울이는 진의 모습은 헌신과 사랑이라는 설명은 두 여인이 기울이는 같은 사랑과 같은 헌신의 모습을 너무 다르게 평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모습은 다양하게 비춰질 수 있는 것이고 한 면에서의 단정과 평가는 편협하고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 뭇 남성들과의 성적 편린이나 구애의 모습도 진실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또 한편 시와 가무에 능하였던 예술인으로서의 진, 금강산이나 예성강 등을 유람하며 시가로 감흥을 전하고 대자연에 압도되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자연합일을 꿈꾸는 자연인의 모습까지 모두 다 체현한 완성인으로 황진을 그려보고자 하였다. 게다가 황진이 전혀 못누렸을 평범한 여성의 삶까지도 제대로 맛본 듯이 그려져 소설을 읽으면서 짜증이 피어올랐다. 우린 삶의 향방을 선택해 가면서 얻을 것을 구하는 댓가로 어느 부분들은 희생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수퍼 우먼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니까....

  처음부터 여성성이 표현되었고 기생으로서의 삶을 그리고자 하였다면, 그 부분만을 부각시켜 보는 것이 소설의 빛깔과 향기를 발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다른 부분들은 다른 작가에게 맡기고 말이다. 또한 인물과 인물의 관계지움과 맺음이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끌어당김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일진대, 황진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니 기우뚱거리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어졌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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