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간결한 글과 깊은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숨을 크게 들이쉰다. 삶의 현장과 동떨어지지 않고 그곳에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있는 글과 그림(10쪽)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며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음이 참 좋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24쪽) - 나무의 나이테를 세어보면서 넓은 부분이 쉽게 세어지는 곳이라서 좁은 부분에 대해서는 겨울에 형성된 것이란 관심외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렇다. 나무테의 겨울나기의 그 좁은 흔적은 얼마나 떨리는 부분인가?
사랑의 방법을 한 가지로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47쪽) - 소유와 사랑을 혼동하는 일은 얼마나 많던지... 더 사랑한다는 욕심으로 독점하려는 파괴적인 생각은 또 얼마나 강하던지... 사랑할수록 서로 바라보고 한 길로 걸어가며 자유롭게 넓혀주는 길을 의식속에서라도 자주 생각하자.
기다림은 더 먼 곳을 바라보게 하고, /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 찔레꽃잎 따먹으며 / 엄마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압니다. (74쪽) - 삶에 지친 엄마를 기다려보면서 찔레꽃을 따먹던 기억은 강하다. 문학속의 이미지와는 달리 내 유년의 추억을 그립게 만들어 가슴에 박혔다.
어지러운 꿈을 헹구어 새벽 맑은 정신을 깨우는 / 맑고 차가운 샘이 있어야 합니다.(82쪽) - 늘 맑고 차가운 머리로 따뜻한 가슴을 안고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발췌하였다. 나의 존재가치와 그보다 더 중요한 관계맺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흐트러진 생각의 실타래를 행위를 통해서 수정되기를 바라면서...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라. / 강 언덕에 서면 /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약속을 생각합니다. (127쪽) - 꽃처럼 피어난 만남과 함께 하는 유언의 그리고 더 많은 무언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동행의 삶을 꿈꾸게 됩니다. 함께 함으로써 행복한 사람들이 되고 싶어집니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기쁨 하나로 하여 엄청난 슬픔을 / 경디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그 작은 기쁨의 소중함을 깨닫고 / 작은 기쁨의 그 위대한 증폭을 신뢰하는 일입니다.(188쪽) -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고 합니다. 작은 기쁨으로 큰 슬픔을 견디게 하는 힘은 선한자만이 꿈꾸는 나눔인듯 합니다. 살수록 단순해지고 또 선해지고 싶은 소망을 품게 하는 글입니다.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194쪽) - 삶의 지혜를 슬기롭게 배우자고 악다구니 써가면서 자신을 채찍질 합니다. 그리고 온유해지자고. 그러나 잊지 않고 간직하는 참 용기는 온유한 모습이든 강철처럼 강한 모습이든 지녀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처럼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잊기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엮은 이들의 이름도 낯설지 않고 글을 다 쓴 개인산방도 내 발자국이 조금씩 찍혀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책의 친밀감이 더하였습니다. 결코 친숙하지 않은데도 한번씩 가까이서 바라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참 정겹습니다. 적은 글속에 더해진 깊은 의미를 행간을 읽어가면서 두고두고 읽어내려가고 바라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