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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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쇼몽 식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길을 잃지 않고 푹 빠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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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곱 살이었고, 슬퍼서 길을 잃었다. 여러 달 동안 계속해서 그 무너질 듯한, 오직 어린아이만이 아는 황량한 형태의 향수를 가차없이 경험했다.

베벨 투자회사에서 시험과 면접을 보는 동안 나는 평생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할 기회가 생긴 한 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상대의 이해관계가 우연히 나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데에는 영웅적인 면이 전혀 없네. 협동의 목적이 개인의 수익이라면, 협동을 연대와 혼동해서는 절대 안 돼.

대의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자기희생뿐이야.

키치. 이 단어의 적절한 영어 번역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원본과 가깝다는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머지 그런 유사성에 창의성 자체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본. “이건 정말 ……랑 똑같잖아!” 실제 감정을 압도하는, 기분의 사칭. 감성을 압도하는 감상벽. 키치는 사람 눈 속에도 있을 수 있다. “노을이 그림 같아!” 지금은 인공물이 절대적 기준이기에 원본(노을)이 가짜(그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후자가 전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으니까. 키치는 늘 역전된 형태의 플라톤주의다. 모방을 원형보다 값지게 여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이는 미적 가치의 인플레이션과 연결되어 있다. 가장 나쁜 형태의 키치, 즉 “세련된” 키치에서 드러난다. 엄숙하고 장식적이고 웅장한 키치. 그것은 과시적이고, 자신이 진정한 것과 결별했음을 오만하게 선언한다.

공기가 프렌치호른 같다.

 

A는 늘 그러듯 의구심을 깊이로, 망설임을 분석으로 오해한다.

둘 사이의 침묵은 늘 공유된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그 침묵을 소유하고 다른 하나와 나누는 것이다.

신은 가장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가장 흥미롭지 않은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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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예외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불가사의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해답이 이처럼 개명된 소수에게는 빤히 보인다. 세상에 대한 이들의 접근법은 아주 쉽고 간단하면서도 틀림없이 옳다. 이들은 거짓된 복잡성을 꿰뚫어보고 인생의 단순한 진실을 발견한다. 밀드레드는 바로 그런 명석함이라는 축복을 받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시련과 언제나 허약했던 건강 때문에 그녀는 어린아이나 노인처럼, 존재의 경계선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천진난만하면서도 심오한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돈을 준다는 건 힘든 작업이다. 계획과 전략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인도주의는 주는 사람에게도 해가 되고 받는 사람의 버릇도 망친다. 더 자세히. 너그러움은 배은망덕의 어머니다.

아버지는 조반니티의 착한 마음과 그보다 착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시인을 강렬하게 싫어했다. 아버지는 그 이유가, 최악의 문학은 늘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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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국에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마력을 지닌 책이다.


시간은 지속적인 가려움이 되었다.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벌어들인 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사치란 천박한 부담이었다.

셸던은 관습적이면서도 당혹스러운 자질, 즉 “취향”으로 넘칠 듯했다. 벤저민은 오직 남에게 고용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이 준 돈을 그런 식으로, 안도감과 자유를 찾아 써버릴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곤 했다.

그곳의 침묵에는 침착한 자신감이 있었다. 마치 조금만 노력하면 침묵이 언제나 이길 수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쓰레기투성이 세상이 망가진 사본을 만들 때 참조한 진품들.


평생 자족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이 문득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친밀함이라는 걸 깨달으면, 친밀함은 참을 수 없는 짐이 될 수 있다. 축복을 발견하면 그 축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권리가 있는지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숭배를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상대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을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의문과 걱정의 무게에 허리가 굽어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동반자 관계에서 새로 발견한 기쁨 탓에 이제는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독을 더욱 깊이 표현하게 된다.


무력함은 종종 적의로 변하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은 결국 그런 가치 절하를 남 탓으로 돌린다는 걸 알기에


작품과 작가 사이의 거리는 오직 실망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가 일어선 게 아니었다. 지구가 가라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이는 과장된 만화적 태도가 그 태도로 감추고자 했던 감정의 강도를 정확하게 드러낸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과장과 허풍으로 진짜 감정을 숨기기도 하니 말이다.


부정은 언제나 긍정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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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속의 희망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 요인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만 그 모든 지식을 굳이 볼 사람이 누가 있기는 할까. 나는 그것을 자주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무엇 때문일까? 학교란 배워서 우리의 삶과 세상을 개선하고자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세상에는 개선이 필요 없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은 그저 우리를 바쁘게 해주는 방법에 불과하다.

정말로 열망할 만한 것이 없는 시대에 삶은 주로 유지 보수였다. 영원한 유지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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