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작은 유리 거울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슬림하게 보이고 하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대비가 재미있어서, 올라갈 때마다 양 쪽을 비춰보곤 한다.
고단한 날에는 슬림하게 보이는 거울이 보기 싫고, 좀 편안한 날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 보기 싫다.
내 몸이 마치 낙엽처럼 바스라질 거 같은 피로감에 휩싸여 멍 하니 슬림한 거울을 보고 있자면, 폐병 환자 같은 추락의 표정이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싫어지기 때문이고,
편안한 날에 뚜웅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거울에 비춰 보자면, 하릴 없이 퍼진 만두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소리 없이 이미 떠날 채비를 하는데,
나는 몸 안에 낙엽을 쌓으면서 버석버석 걸어간다.
할 말은 그 낙엽들 마냥 누군가 밟기라도 하면 금방 재처럼 부르르 떨다가 흩어진다.
건조하고 또 건조하다.
언젠가 그토록 원하던 건조됨이건만, 이제 내가 본 거울 두 개는 바라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두고온 많은 것들이 날 더러 다시 돌아보라 한다. 이제 그만 하라고 소리친다.
외면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물끄러미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러 사신처럼 다가온다.
내 안의 낙엽들이 초록 물기 머금은 잎으로 다시 태어날 다음 여름까지, 그 시간들은 더 많이 와주어야만 하는데, 무엇을 해야 , 무슨 생각을 해야 , 무슨 노래를 불러야, 누구를 만나야, 그 시간들이 와주는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서러운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