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째인지 모르게 근본 없는 대화와 독서만 되풀이하고 지낸다. 변덕스러운 장마철 기후에 온난화 현상은 내게도 여지없이 적용되는건지. 말을 대폭 줄이고 싶다는 생각만 되풀이 하면서, 정작 필요한 말은 안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무수히 하며 해놓고 후회할 것이 뻔한 말은 옆에서 입을 막으며 뜯어말려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근본 없는 대화란 무엇이냐. 서로가 바라는 관심이 아닌, 필요 없는 혹은 갖지 말아야 할 관심을 가지고 하는 대화, 혹은 침묵이 주는 뼈저린 깊은 사고의 홍수를 미연에 퇴치하고자 성급히 내뱉는 말 끝에 꼬리를 무는 대화, 그러고도 입맛을 다시며 왠지 도장을 찍듯이 탁 치지 못하고 주절주절 넝마처럼 주워담기만 하는 말들의 연속. 이럴 때에는 차라리 매우 비즈니스 적인 냄새가 나는 대화를, 매우 상관이 없는 자들과 하는 것이 나을 거 같은 착각이 들지만, 그것은 어차피 엄밀히 ‘대화’가 아닌 ‘억지 소통의 도구’정도로 전락한 상태. 불을 끄고 천정을 보면, 좌절,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근본 없는 독서란 무엇이냐.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혹은 책을, 활자중독인도 아니면서 자꾸 자꾸 들여다보는 거다. 그리고 좋은 책이냐 나쁜 책이냐 따위에 대한 생각을 집어치우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 없는 거다. 그리고도 욕심 많은 스쿠루지처럼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고, 이 작가 저 작가 기웃거리면서 나도 이렇게 잘 쓰면 좋을까 , 아니 그냥 이렇게 속 편히 읽고나 있는게 좋은가 갸웃거리면서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은 괜히 성마른 채로 여름날들은 간다. 이런 판국이니, 촉촉한 것들은 다 제치고, 당분간 일 아득바득 하고, 밥 우걱우걱 먹고, 잠 푹푹 자면서 황소같이 지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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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7-2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평소에는 근본 있는 대화만 하셨다는 말씀? ^^;;

Fox in the snow 2006-07-2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본이 있던 없던 누구랑 '대화'란 걸 해본지가 언제인지..흠..아예 입다물고 살아버릴까 싶을 정도로 말하기 싫은 요즘입니다.

치니 2006-07-2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 / 웃, 그렇게 말씀하시니, 얘기가 그리 들렸을 법도 하네요.
그럴리가요, 평소에 죽 그래오다가 요즘 자각이 더 심하게 든거죵. 흑.

치니 2006-07-27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ox in the snow / 위에 수단님에게 댓글 담과 동시에 Fox..님 댓글이. ^-^;;
제가 바로 그 입 다물고 살아버릴까 싶은 심정에 저따위로 배설하게 되었습지요.
그래도...사는 동안 아주 사소하나마 교차하는 공감의 순간이 번뜩 할 때가 있고, 어쩌면 그 맛에 그럭저럭 버티는지도 몰라요. Fox in the snow님도 그러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