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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독하다
황인숙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번 [인숙만필]을 너무 재미나게 읽어서, 자못 기대가 넘치는 마음으로 비슷할 줄 알면서도 또 읽어댄 내가 더 경솔할 지도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기대에는 꽤 못미치는 수필집.
예의 '명랑하게 심금을 울리는' 장기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지만, 난삽하게 짜집기한 내용은 아무래도 집중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그 필체와 내용도 수준이 상이하여, 고르지 않은 자갈밭에서 맨발을 신고 걷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건진 게 있다면,
모르는 영화와 책에 대한 정보들.
황인숙은, 본인이 직접 대놓고 그러하다고 인정한 적은 없어보이지만, 음악 영화 문학 다방면에 독자나 애호가로써 상당한 감상 레벨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엉성한 애호가들의 어디서 베낀듯한, 혹은 너무 식상한 평 보다는 훨씬 체감적이고 야무진 정보안내서 다운 감상문이 곳곳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녀가 강추하는 비디오나 책들은, 안타깝게도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닐 뿐더러 절판 되거나 사라진 것들이지만, 그래도 행여나 어디 헌 책방에서라도 길거리에서라도 눈에 띄면 잽싸게 구해둘 작정으로 책 갈피를 접어두는 기분은 잠깐이나마 공짜로 뭔가를 얻는거 같은 배부름을 준다.
아무튼지간에,
별로 고독하지도, 별로 엄청 슬프지도, 별로 엄청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무식하지도 유식하지도 않게, 무척 가깝게도 무척 멀게도 느껴지지 않게 살아가는 이 이는,
'나는 고독하다'고 말하는 것은 실상 고독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자조적인 내뱉음이라고 하는데,
본인이야 어떨른지 몰라도,
길가의 나무 하나가 겪는 고독함에도 동조하고 마음이 서늘해질수있는 빼어난 감수성을 지닌,
천상 시인임에 토 달 자 없어보인다.
다음에도 나는, 이 이의 수필집을 또 읽게 될까? 아마도 예스.
문학적인 수준 자체는 논외로 하고, 그냥 이 작가가 보여주는 사소한 생활에서 빚어내는 재잘댐이,
여전히 듣기 좋고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