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문득, 오늘 자 연예계 뉴스를 휩쓸고 있는 김장훈 씨가 생각난다.

자선 혹은 남을 돕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정말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일까.

그저 내 돈 1원만 허투루 나가도 아까워서 바들바들하는 사람들이 천지에 많고 내 신간이 편치 않으면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는 판국에 어쩜, 참으로 존경스럽다, 한 푼도 기부도 않고 봉사도 안 하는 주제에 하는 사람들 두고 뭐라지 말자, 이 정도로 덮어두고 이해하면 될 만한, 그리고나서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마음의 위안을 얻을 테니 됐다, 하고 생각하면 되는 단순한 마음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기부천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공황장애를 앓고 자살 기도를 하는 한편, 열정적으로 전인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에 대한 희망을 아직 이야기하고 민족주의자 소리를 들으면서 독도 지킴이 노릇을 한다고 바다에 뛰어드는 양극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이 그와 비슷한 질문에 대하여 약간이나마 답변을 제시해준다, 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원래 이기적인 종자인 우리 인간들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방법적 차이, 나는 좀 냉정하고 성급하게 그런 결론을 내린다.

물론 이 책에서도 말하듯, 인생에서는 온정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고 나 역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온정과 사랑의 방향이 남을 향하고 있더라도, 종래에는 그 목적이 향하는 곳은 나 자신,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나 자신을 위한 한 줄기 빛이라서 그 온정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본 영화 <가족의 탄생>의 정유미가 헤픈 여자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남자친구와의 오붓한 시간을 매번 파토내면서까지 선후배 및 주변인을 뒤치닥거리하고 다니는 것과,

이 책 속에서 청년 장이 구제불능이라 할 만큼 남의 불행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결국 육십대 여성과 애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괴로움을 호소하는 예만 봐도,

무언가를 '베푼다'는 시혜적인 입장이 되지 않고 남을 돕는다는 자각조차 없이 남을 진정으로 돕고 사는 삶이란 인간에게 거의 불가능한 삶이며, 만약 가능하다 하더라도 가혹할 만큼 깊은 고뇌를 유발한다.

그런데 후반부에 책은 얄궂게도 그 고뇌를 극복하고 그야말로 솔로몬 왕의 지혜로움을 완벽히 현세에서 선사하는 인물인 팔십대 노신사 솔로몬이, 실은 45년 전에 죽도록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원한과 복수에 가득차 있는 삐돌이, 옹고집, 욕심쟁이였음을 탄로한다.

그렇다고해서, 솔로몬의 위대함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다. 그는 정말 보기 드물게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없고 그를 통해 생명을 구한 사람들의 숫자만 봐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반드시 은총을 내려야 할 인물, 아니 그 자체가 하나님보다 더한 일을 해주는 존재라는 사실은 '남들에게' 여전하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그 자신은 어떠한가, 그의 내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를 책은 '사랑'과 '늙음 혹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교묘하게 섞어가면서 흥미진진하게 고하고 있다.

그러니까 거칠게 단정하자면, 남을 구원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도 인류애를 발휘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더 세상에 대해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솔로몬이든 장(자노)이든, 무척 고독한 인물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고통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서 보람을 찾는 유형인데 이들이 아무리 전심을 다해서 정성을 기울여도 타인은 타인인 법. 타자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거울만 보느라 실제 자신의 모습을 애써 도외시하는 이들에겐 '행복'이 그저 사치품으로만 전락하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니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궤변적인 논리를 펼쳐가며 개인적인 사랑에서는 종종 비겁자가 되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 결말이 조금 시시하다 싶게 해피엔딩이라 어안이 벙벙하긴 했지만,

모든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독학하는 조폭 외모, 여린 감성, 구제불능 구조병에 걸린 자노 라팽이랑,

그가 보편적 인류애를 실험해보게 해준 '사랑 밖에 난 몰라' 마드무아젤 코라랑,

마드무아젤 코라의 존재를 쿨 하게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병적인 자노를 감싸안을 줄 알았던 현명한 알린이랑,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라서 (나 역시 자노처럼) 절대 대화하고 싶지 않은 재수없는 너드 척이랑,

그리고 우리의 멋지고 완벽한, 깊은 눈에서 검고 광기에 가까운 빛이 번득이는, 불노초를 먹은 것처럼 혈기왕성한 이 시대의 로맨티스트이자 기성복의 제왕인 노인 솔로몬 씨를,

모두 많이 사랑하면서 읽어서 모처럼 독서 후에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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