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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평점 :
영화는, 내게 있어서 좀 애매하다.
종합예술이라는 말로 간단히 모든 예술적 쟝르를 어우르는 것, 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뭔가 조금 석연치 않다.
이 세상에 있는 예술 장르란 장르는 다 넣어도 영화고, 그 중에 몇 가지는 빼먹어도 영화고, 이야기가 있어도 영화고 없어도 영화고, .....유일하게 영화만이 갖는 고유성이 있다면 비주얼, 즉 보여지기는 해야 한다는 점뿐이리라. 나머지는 다 제멋대로 직조하는 것. 그리고 이 직조의 가능성은? 오, 그야말로 무한할 것이다. 그러니, 영화는 애매하지만 그 애매함이라는 요소가 답답하기 보다 도리어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게 되는 장치로 작용하는 매체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 어떤 학문, 문화, 예술쟝르도 영화와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인문학도, 아니 인문학이니 더더욱, 영화와는 상관이 많다.
특히나 인문학의 '인문'을 인간의 무늬라고 전제하는 김영민같은 철학자에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관념을 밑절미로 하여 인문학적 접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인다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그런데 영화는 또한 묘하게도, 우리 일상에서 아주 흔한 오락거리, 고래로부터 계급과 상관없이 쉽고 싸게 즐길 만한 오락거리로 자리매김한 터인지라 '영화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 되지, 뭘 그리 분석하나! 쓸데없는 짓이다'라고 일갈하게끔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 중 다수는, 영화를 문학작품이나 클래식 음악 같은 것보다는 뭔가 하류라고 치부하는 부류인 것 같다. 또 다른 부류는, 영화 자체를 수준 낮은 오락으로 봐서라기 보다는 소위 '분석'하고 '평가'하기 좋아하는 지식인들에게 잉여 짓 좀 그만하라는 의미에서 비슷한 말을 내뱉는다. 글쎄, 뭐, 좀 거친 단정이기는 해도, 너른 맥락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이해된다.
하지만, 이 책을 두고 위 두 가지 이유에서 덮어놓고 배척한다면 조금쯤은 억울할 것 같다. 영화의 내용이 나오고 영화 속 이야기를 주로 하고는 있지만, 완성도나 스타일, 테크닉 따위의 잣대를 들이대어 잘했다 못했다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또는 어떤 장면이 특별히 인문학적으로 특정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고 알려주기 보다는, 김영민이 평소 지닌 인문학에 대한 공부 방향성과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선별된 영화들이 거꾸로 이용된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랐던 독자에게는 재미없고 어려운 책이 되었겠고, 인문학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독자에게는 재미있기도 하고 곱씹을 만한 거리도 많은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둘 다 바란 독자였는데, 예전에 읽었던 저자의 책 '동무론'보다는 쉽고 간결하게 정리된 개념 풀이가 영화와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로웠고, 영화 이야기 중 내가 호불호 하는 부분(사람)이 일치하는 지점이 군데 군데 있어서 좋았다. 다만, 아직도 이 분이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고 하는 것들 대개는 내게 참으로 어렵고 버겁게 느껴진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