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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ㅣ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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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 구멍을 내준다. 늘 보아온 풍경을 달리 보게 하고, 신선한 면을 보게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의나 상식으로 여겨져온 것을 뒤집는 위협도 숨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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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정의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들이 더 잘 알아듣게 쓰는' 것일 지도 모른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두번 째(지난번 '프라하의 소녀시대' 이후) 접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명료하고, 균형 잡혀있고, 유머러스하고, 교조적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성찰을 담담하게 나누는 그녀의 화법은, 위에 적은 한 문장으로 간단히 요약될 만한 일관된 주제를 여러가지 사례로 풀어내는 이 한 권의 가볍지도 묵직하지도 않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엔돌핀의 역할을 한다. 고정관념이나 상습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 같은 이에게도 조금의 부담감이나 죄책감을 주지 않고 그저 그녀의 명강의에 즐겁게 귀를 기울이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게 하니, 효과적이기 이를 데 없는 것.
이것이 그녀가 작가 이외에 가진 또 하나의 직업, 통역사라는 직업이 가진 장점 - 타 문화에 접한 경험이 유달리 많다는 -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마리 여사에 비하면 그 경력이나 실력이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번역과 통역 일을 해보았던 나의 주장이다.
감히 말해보건대, 마리 여사는 통역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직업을 가졌어도, 이만큼 혹은 그 이상의 통찰력으로 그 직업을 통해 얻은 모든 정보와 세상을 바라보는 제대로 된 시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을 것이고, 나로 말하자면 번역/통역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서 얻게 된 지식이나 눈꼽만큼의 통찰도 스스럼없이 나눌 재기를 갖지 못했으니, 아, 읽으면 읽을수록 자괴감에 빠져드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양가도 있고 맛도 있는 달콤한 케잌을 야금야금 베어 먹으면 포만감과 행복감에 빠져들 듯이, 이런 책을 자괴감 때문에 외면한다는 것은 참으로 바보스러운 짓. 내가 같은 직종에서 일했던 당시에 말하고자 했던 수많은 말들이 어두운 심연에 가라앉아 있다가 뽀글뽀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은 문장들을 꼼꼼이 읽어나가는 즐거움은 전작에 비해 유달리 그 속도가 경쾌하고 빨랐다는 것을 말해두고싶다.
그나저나, 마리 여사가 모스크바에서 열린 마법사 집회에서 받았다는 '악마와 마녀의 사전'이라는 책은, 나도 어디서 얻을 수만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고싶네, 이런 식이라니, 마법사들 너무 귀여운 것 아닙니까. 후후.
사랑: 공짜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거는 주문의 일종. 이 주문에 걸린 사람은 대가 이상의 것을 받았다거나 상대의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주문을 외는 사람이 착각하여 자신이 손해 봤다고 여길 때도 많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등 일부러 토를 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본래는 대가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희망: 절망을 맛보기 위한 필수품.
배려: 약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강자에게만 보이는 공손함의 표시.
겸손: 자랑하고 싶은 것을 남이 대신 말하게 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