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오래전에 읽었던, 은희경의 어떤 단편집에는 - 아마 그 단편집이 내가 처음 은희경을 접하게 된 책이었을게다 - 전율을 느낄만큼 딱 들어맞는 '셋'에 대한 찬사가 실려 있었다. 구구절절 기억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 나는 '아 맞아 셋이 이렇게 좋은데! 그간 잊고 있었다니'라고 대동감하고 이후 죽 셋에 대한 호감을 버린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얼렁뚱땅 호감과 유사한 듯한, 나만의 수에 대한 느낌이 또 있는데, 짝수와 홀수를 대비하면 항상 짝수가 좀 답답한 느낌 - 좋게 말하면 꽉 찬 느낌이겠지 - 이 들고, 홀수가 할랑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홀수가 항상 마음에 든다. 그중에서도 1은 홀로 독야청청 같아서 좀 불안하고, 3에서 좋아지다가 5가 가장 좋다. 5가 3보다 좋은 이유는, 그냥 발음상의 느낌과 생긴 모양의 느낌 때문이다. 오! 하고 받힘 없이 간결히 떨어지는 발음이랑, 오른쪽 옆이랑 아래가 뚫린 이미지가 시원하다.그런데 사람의 수로 생각하면 5보다는 3이 좋다. 5는 하나 둘 셋 넷...세다가 벌써 복작한 기분이다.
셋이 지내는 편이 모든 면에서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굳어진 뒤로는, 둘로 계속 지내고 셋을 못할 바에야 혼자 지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둘로 지내는 부부들의 대다수가 자연스럽다는 듯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그런 셋, 삼각형 구도에 대한 무의식에서 나온 지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아무튼 가족사로만 국한 시켜 따지자면, 나에게는 둘이다가 셋이 된 시절, 셋에서 둘로 떨어져 나왔던 시절, 혼자가 되었던 시절, 완전히는 아니지만 둘이 된 시절이 골고루 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이다가 둘이다가 가끔 셋이 된다.
그것도 굳이 가족이라는 이름을 내세울 필요 없는 셋이 된다.
초기에 이 조합을 이루는 걸 상상할 때는 두려움만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에 이루는 삼각형은 자칫 역삼각형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꽤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심스럽게 살포시 치마를 펼친 삼각형이 되어, 살짝 한 쪽 면이 많이 기울다가 올라갔다가 하면서, 관심도와 거리를 본능적으로 조정해가면서, 경박하지 않은 명랑함과 은밀한 배려 속에 자연스러움을 갖추어간다.
재미있는 건, 이런 삼각형이 인간 삼각형이 아니고 인간과 동물의 삼각형이어도 꽤 좋다는 걸 요즘 체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나와 아이와 개가 있을 때, 나와 아이가 둘만 있을 때보다 우리가 누리는 시공간은 제약적이지만 보다 생명력 있더라는 거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생각보다 그 효력이 크다. 개 때문에 겪게 되는 부자유와 온갖 노동들을 감안하더라도, 나와 아이가 둘일 때 자유롭고 차분하게 느끼는 만족감을 잠시 보류하더라도, 온집안을 휘저어놓고 수시로 놀아주거나 챙겨주어야 하는 존재 때문에 나는 쓰러져가며 격렬하게 웃고 떠들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마음에 덕지덕지 붙었던 고단함들을 많이 날려버린다.
이 인간 삼종 세트와 인간 둘+개 세트는 삼각자의 한 쪽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는 시간이 함께인 시간보다 많다는 것도 특징이다. 언제까지 이럴 지 아무도 모르지만, 계획하지 않은 이 삼각의 세트들은 요즘의 내게 가장 소중하고 평화로운 선물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