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책 문학사상 세계문학 13
밀란 쿤데라 지음 / 문학사상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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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를 읽을 때마다, 소화 불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미욱하게 자꾸 집어드는 이유는, 지적 허영심일까 쿤데라의 매력일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져 있는 각각의 단편들을 통찰력을 가지고 받아들이려면, 우선 각각의 단편들에 나오는 캐릭터나 스토리를 마치 내가 쓴 것처럼 꿰차고 있어야 하는데, 절대 용이하지가 않다.

나처럼 기억력이 치매 환자 수준인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그 통찰력을 포기하고, 그저 미문을 즐기거나 잠언과도 같은 몇 단락들을 곱씹으면서 읽으면 꽤 만족스럽기도 한 것이 이런 작가가 일반 대중에게 주는 선심이다 (아마 자기도 모르게 주게 되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만든 입장에서 보자면 나 같은 독자는 정말 한심할 것이 틀림없다.

한껏 정성 들여 요리를 해놨더니 소스만 살짝 먹어보고, 아니면 좋아하는 재료가 들어간 한 부위만 먹어보고, 맛이 있네 없네 하는 격일 거라는 뜻이다.

언젠가 다시 읽어보지 뭐 하고 쉽게 마지막 책장을 덮어버렸지만, 쿤데라씨에게 미안하다.

그 노고가 쉬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써 두기는 했지만, 체코의 당대 정치 환경에서 개인적으로 겪은 고난의 체험들과 오랜 망명 덕분에 생겼을 수도 있는 농축된 지혜를 '웃음과 망각'으로 기껏 승화 했는데, 이 책을 통독 하거나 백분 이해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으니, 안됐기도 하다.

무슨 오지랖이냐, 안됐다니.

그냥 소화불능인 자신에 대한 변명이 이딴 시시한 리뷰가 된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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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2008-06-1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는 이유는 순전히 지적 허영심 때문이에요. 나이가 드니 너무 가벼운 책만 읽을 순 없더라고요. 삶의 짐이 무거워진 것도 있지만 그런 책을 들고 다니면 남들이 저까지 가볍게 생각할까봐 신경쓰여서요. 옆구리에 끼도 다녔을 때 뽀대나는 책이 가끔은 필요한데 쿤데라의 책이 그렇더라고요. (한심한가요? 물론 한심하실거예요.) 지금 그 허영심에 또 책 한 권을 일고 있네요. 가볍고 우울한 사랑. 도 닦는 마음으로 읽고 있어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넘 재미없어 심장까지 느리게 뛰네요. 쩝

치니 2008-06-12 10:19   좋아요 0 | URL
음 ,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뽀대 뿐만은 아닌 무엇이 있을거라 여겨지는걸요? ^-^
가볍고 우울한 사랑, 에 ... 요즘 저에겐 그닥 관심 안가는 이야기일거 같네요.

chaire 2008-06-1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에 대한 의견이 저랑 비슷한 거 같아서 반가워요. 히히.
집에 몇 권 있는 옛날의 쿤데라 책들이 그래서 늘 낯설다니까요.
이참에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농담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싶어요.

치니 2008-06-12 13:38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가워요, 히히.
<농담>도 저 역시 읽은 거 같은데 내용이 기억 안나는 쿤데라의 작품. 흙.

치니 2008-06-12 13:44   좋아요 0 | URL
아, 그러나 이 책에서 하나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있다면 <리토스트>에요.

어느 날, 그는 여자 친구와 ㅡ수영하러 갔다. 그녀는 일류 수영 선수였으나, 그는 가까스로 물에 뜰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물 속에서 호흡을 멈추기가 어려웠으므로 머리를 수면 위에서 앞뒤로 흔들어대면서 천천히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그의 여자 친구는 그에 무척 빠져 있었으므로 사려 깊게 그와 속도를 맞추어 헤엄쳤다. 그러나 수영이 끝날 무렵이 되자, 그녀는 본래의 운동 선수로서의 본능이 발동하여, 빠른 속도로 반대쪽 강기슭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그도 좀더 빨리 헤엄쳐 보려고 노력했지만, 물만 잔뜩 마시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약골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창피하고 분해서 '리토스트'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특수한 슬픔을 느꼈다. 그는 허약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육체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았고 친구도 없었으며, 오직 엄마의 과잉 보호 아래 자랐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리고는 속절없는 절망감에 잠겼다.(p.181)

아마 카이레님도 이해하실거 같아서, 다른 분 리뷰에서 베껴왔습니다. :)

mooni 2008-06-1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하고 중대하다고 평가되는 서사적 주제들(사랑이니 숙명이니 정치적 판단이니 모랄이니 하는 것들요)에 대해서 가볍게 웃기, 농담으로 비틀기, 우연으로 치환하는 밀란 쿤데라의 수법이 저한테는 꽤 먹히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작가라 이 사람책은 잡으면 책장이 바람처럼 넘어갔었어요. 쿤데라 독서의 묘미 중에는 부서진 조각조각의 문단, 에피소드, 문장들도 전체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파편일지라도 독립적으로 즐기게도 해주는데도 있다고 생각해요. 치니님같은 독자 읽으라고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같은데요? ^^

밀란 쿤데라는 자기 책 번역 현황에 엄청 까다로워서 언젠가는 출간된 걸 회수한 전력도 있죠. 전 몇개인가 단편은 해적본같은 엉터리 번역으로 읽다가 한국어를 할 줄 알면 번역본 어떻게 하라고 했을까나 그런게 좀 궁금하고 그랬어요. 노발대발 하지 않을까요? ㅋㅋ 뭐든 농담으로 치부하면서 자기 책이 우스갯감이 되는걸 못참을 거에요. 이 작자도. 아마.

치니 2008-06-13 08:48   좋아요 0 | URL
전 어려운 건 왠만하면 다 소화불능이라. 흑. 저도 바람처럼 넘기며 꿀떡꿀떡 쿤데라를 이해하고 싶어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란 말여요 힝)

번역 이야기가 나와 말인데, 예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다음 쿤데라 책은 영어로 읽을테야! 라고 마음 먹고 <정체성>을 영어로 읽었드랬죠. ㅠㅠ 그때의 좌절감이라니. 한글로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주제에 번역 탓을 할 때가 아니란 걸 절실히 깨닫고 포기했답니다.

건조기후 2008-07-0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 역시 그의 삶과 철학을 얼마나 이해하며 읽었을까 돌이켜보면 답이 안나오죠;; 그가 나타내려고 했을 무언가를 또박또박 느껴내는 훌륭한 독자라면 참 좋았겠지만ㅡㅡ 그럴 능력이 안되는 이런 독자를 쿤데라가 팬으로 가져야하는 건 그의 불행이라면 불행이랄까요.ㅎㅎ

다만 저에게 이 책이 좀 특별했다면.. 책을 읽던 도중에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일을 당했는데 한참 뒤에 다시 책을 폈을 때 마침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여한없이 펑펑 울어대며 책을 봤었죠. 쿤데라 책을 보고 그렇게나 울다니ㅜ 말도 안되는데 그래서 이 책은 아주 과도한 감정으로 읽게 되어서 혼자 책과 별로 상관없는 생각까지 엄청 해댔더랬답니다. 분명히 계기는 책을 통해 얻었지만 나중에 보면 왜 이러고 있나 싶은. 저두 이 책 리뷰를 쓰긴 했는데 그냥 좋다는 얘기만 줄줄 늘어놨지 뭐 구체적으로 정리된 게 없죠;; 지금 읽어보면 뭐 저런 붕붕뜨는 리뷰가 다 있나 싶다는--ㅋ

하지만 당시엔 책의 모든 내용이 아버지에 대한.. 또 아버지의 일을 계기로 깨달은 많은 생각들과 맞물려 쿤데라가 의도했든 아니든 제게 많은 위안과 힘이 되었던 건 사실이죠.. 그래서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더군요. 위안? 사랑? 헛;; 암튼.. 책이야 다 자기 나름대로 느끼는 거긴 하지만 이 책의 경우엔 그 범위이탈?이 좀 심했던. 어쨌든 나중에 다시 읽긴 읽어봐야하겠죠.ㅎㅎㅎ

(처음 뵙죠.. 뒤늦게 인사 살짝 남깁니다. ^^:)

치니 2008-07-01 17:51   좋아요 0 | URL
아, 건조기후님, 반갑습니다.
지금 그쪽 서재로 가서 많지 않지만 하나 하나가 알이 꽉 들어찬 것 같은 살뜰한 리뷰들을 읽었네요.
부끄러운 기분이에요.
헐렁이 글만 써대는 저로서는...^-^;;
아버님의 상을 당한 상황에 읽는 쿤데라, 어떨까...사실 가늠조차 안되는 슬픔이라,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여한없이 우셨다는 말씀에는 공감이 갑니다.
어떤 책은 꼭 나만을 위해 써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애착이 가게 되는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죠. 그런 점에서 쿤데라는 정말 예찬하실만하겠어요.
저에겐 늘 어렵지만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인 글을 쓰는 사람. ^-^

건조기후 2008-07-0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코. 치니님 글 읽고 괜히 찔리니까 저렇게 구구절절 댓글을 단 거죠;; 헐렁이라뇨 예리하십니다. 덕분에 내가 쿤데라를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그냥 미문에 혹하고 몇몇 단락에 반해서 적당한 만족을 하고 있는 건지 곰곰 생각해봤답니다. 책을 얼마나 깊게 이해해야하는가의 문제는 좀 머리가 아프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가능한 최대치의 이해로 녹여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거니까요.

결론은.. 머 그냥 한번 더 읽어보자는 겁니다. 아하하;; 한번으로는 안되는 쿤데라인 것도 알고 그것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느껴진다면.. 그건 그냥 자질이 부족한 독자를 둘 수 밖에 없는 쿤데라 팔자로 넘길랍니다..ㅋ

치니 2008-07-02 08: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최대치의 이해를 하고 싶어지는 책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 점에선 쿤데라 작품의 어려움도 나름의 의미를 갖는거 같아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접어두게 되지 않고, 꼭 한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저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