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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무늬
황인숙 지음 / 샘터사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인기를 꽤 얻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 변덕스럽기도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구나" 하면서 허탈하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경험이 있을 거다.
괜한 오지랖이 만든 걱정이겠지만, 나는 누군가 너무 인기를 끌거나 소위 '안티'하나 없이 좋은 소리만 들으면, 그 사람이 언젠가 그런 마음이 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곧이어 "나라도 항상 변치 않는 응원을 해주어야지"라는 자못 우스꽝스러운 결심도 한다.
이런 걸 간단히 말하면 "의리"라고 하나, "고집"이라고 하나, 모르겠다.
황인숙의 "인숙만필"을 읽었을 때 초롱초롱하니, 맵시 좋은 아씨 같이 매끈하게 빼낸 시적이고도 재미난 글들에 완전히 매료 되어, 그 이후 황인숙이라는 이름 석자만 눈에 띠면 바로 보관함에 넣곤 했었다.
"나는 고독하다" 이후로 이번이 내가 읽은 세번째 산문집인데,
그녀는 (자신이 글 속에서 여러번 고뇌하고 있듯이) 이제 그 쫀득쫀득하고도 쿨한 자신만의 감성을 표현하는데 저으기 게을러 보이기까지 한다.
너무 여전하다고 해야 할까.
얼핏 글 꽤나 쓴다는 블로거들의 홈피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글들이 꽤 되는데, 이미 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다 알고 있는 남산, 사는 동네, 고양이, 친구들, 음악, 다이어트 등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내용들이 전혀 변화가 없으며, 그 변화 없음이 반갑기도 하지만 식상하기도 하다.
반가움보다는 식상함이 더해지는 순간은,
같은 것을 보더라도 시인만의 감성으로 보던 그 예쁜 눈이 늙었구나 싶어질 때다. 왠지 나마저도 서글픈 것이다.
고료를 주지 않으면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농담 삼아 말하는 시인은,
정말로 고료를 받고 친구에게 편지 쓴 내용을 책 속에 실어 놓았다.
내 욕심이 과한 지 모르겠으나, 고료를 받지 않는 글을 쓰지 않은 지 오래라는 시인의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저 시인 지망생을 가르치고, 고료를 받고 짤막한 꽁트나 에세이를 써서 일용할 양식을 꾸리는 우리네 삶과 유사한 이웃같은 삶만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에서 아직 남은 치열함이 고개를 들어서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쓴 시집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의 지지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말한 의리 내지는 고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실하게 엮어진 산문집이나마 여전히 깔깔 소리를 내며 웃을만한 폭죽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황 묘사나 심리 묘사에서 시인만의 독특하고 과장되지 않은 단어 씀씀이가 눈에 띠는 대목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재미를 느낄 때마다 한편 '아직은 죽지 않았어' 정도의 안도감도 동시에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책은 요령부득이다.
시인은 역시 외로워야 하나보다, 그가 '고독하지 않다'고 외친 후부터 이런 느낌이 짙어지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