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가 체코의 어떤 마을을 떠나 돈벌이를 하러 갔다. 이십오 년이 지난 뒤에 그는 부자가 되어 아내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누이와 함께 고향 마을에서 여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을 놀래 주려고 사내는 아내와 아이를 다른 여관에 남겨 두고 어머니의 집으로 갔는데, 그가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장난 삼아 방을 하나 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기가 지닌 돈을 내보였다. 밤중에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그를 망치로 때려죽이고 그가 가진 돈을 턴 다음 시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아침이 되어, 사내의 아내가 찾아와 자기도 모르게 여행자의 신원을 밝히게 되었다. 어머니는 목을 맸다. 누이는 우물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아마 수천 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또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였다. 어쨌든 내가 볼 때 그런 결과에 대해서는 여행자에게도 좀 책임이 있었으며, 그리고 장난을 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문이 끝났다. 법원을 나와 호송차를 타러 가면서, 나는 짧은 한순간 여름 저녁의 냄새와 빛을 기억해 냈다. 굴러가는 감옥의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했던 한 도시의, 그리고 이따금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던 어떤 시각의 귀에 익은 그 모든 소리들을, 마치 내 피로의 밑바닥으로부터 찾아내듯이 하나씩 되찾아 냈다. 이미 고즈넉하게 가라앉은 대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문팔이들의 외치는 소리, 작은 공원 안의 마지막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들의 호객하는 소리, 시내 고지대의 굽은 길에서 울리는 전차의 마찰음, 그리고 항구 위로 어둠이 기울기 전 하늘의 저 술렁이는 소리, 그러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소경이 되어 더듬어 가는 행로를 재구성해 주고 있었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잘 알고 있었던 그 행로를 말이다. 그렇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내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곤 했던 그런 시각이었다.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언제나 가볍고 꿈도 없는 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왜냐하면, 다음 날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이제 내가 다시 대면한 것은 바로 나의 감방이었으니 말이다. 마치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우리를 감옥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순진무구한 잠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는 듯이.

물론 희망이란, 힘껏 달리던 도중 길모퉁이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것이었다.

단두대 칼날의 경우, 결함은 그것이 그 어떤 기회도, 절대적으로 그 어떤 기회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요컨대 단 한 번에 그 환자의 죽음이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며 확정된 배합이며 성립된 합의여서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다시 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난처한 것은, 사형수로서는 기계가 순조롭게 작동해 주기만 바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 말은, 바로 그것이 불완전한 면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렇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그 훌륭한 조직의 모든 비결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수형자는 정신적으로 협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든 것이 탈 없이 진행되는 것이 그에게 이로운 것이다.

그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로군, 안 그래? 그러나 그의 신념이란 건 죄다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도 못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셈이지. 나를 보면 맨주먹뿐인 것 같겠지. 그러나 내겐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 신부 이상의 확신이 있어. 나의 삶에 대한, 닥쳐올 그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래, 내겐 이것밖에 없어.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굳세게 붙들고 있어. 그 진리가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만큼이나.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아.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았고, 다른 식으로 살 수도 있었어. 나는 이건 했고 저건 하지 않았어. 나는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은 했어. 그러니 어떻다는 거야?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나의 정당성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난 그 까닭을 알아. 신부인 그 역시 그 까닭을 알아.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었어.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들,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들,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오직 하나의 운명만이 나 자신을 택하도록 되어 있고, 나와 더불어 그처럼 나의 형제라고 자처하는 수십억의 특권 가진 사람들을 택하도록 되어 있는데 말이야. 이해하겠어? 이해하겠냐고?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진 존재야.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 없어. 다른 사람들도 역시 장차 사형 선고를 받을 거야. 신부인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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