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매우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났다! 야호.


우리의 친구는 도시에서 소년처럼 살았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았다. 소년의 하루처럼 그의 하루는 길고 길었으며 시간이 넘쳤다. 그는 공부하고 글을 쓰고 생활비를 벌고 자신이 사랑하는 거리에서 한가하게 빈둥거리기 위한 시간을 찾는 법을 알았다. 게으름과 부지런함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리는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부지런히 일해야 할지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했다. 그는 수년 동안 특정한 직업을 갖고 정해진 시간에 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사무실 책상에 앉기로 결정하자 꼼꼼한 직원이며 지칠 줄 모르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게으름을 피울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 식사를 할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으나 거의 먹지 않았고 눈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는 때때로 몹시 슬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성인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그런 슬픔에서 벗어나리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의 슬픔은 우리 눈에는 소년의 슬픔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았고 무미건조하고 고독한 꿈의 세계에 사는 소년의 관능적이고 무기력한 우울 같았다. 그는 이따금 저녁이면 우리를 찾아왔다. 목도리를 두른 채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손에 돌돌 말거나 종이를 구겼다. 그는 저녁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뭐라고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외투를 집어 들고 가버렸다. 그러면 모욕을 느낀 우리는 우리와 같이 있는 게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닌지, 우리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집이 아니라 우리의 집 불빛 아래에서 조용히 저녁을 보낼 생각이었던 건지 서로에게 묻곤 했다. 

게다가 그가 기분이 좋아 보일 때도 그와 대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아도 그와의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일 수 있었다. 우리는 그와 만나며 훨씬 똑똑해졌다. 우리 안에 있는 보다 뛰어나고 진지한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우리는 진부함과 부정확한 생각들, 그리고 모순을 던져버렸다.


  우리는 그 친구 곁에서 종종 굴욕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처럼 절제를 할 줄도, 겸손할 줄도, 너그러울 줄도, 이타적일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인 우리를 퉁명스럽게 대하고 우리의 결점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받거나 아플 때는 갑자기 어머니처럼 자상해졌다. 원칙적으로 그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뜻밖의 사람, 어쩌면 어딘지 모르게 비열해 보이기도 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너그러워지고 다정해졌으며 서슴없이 많은 약속을 잡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가 그에게 그 사람이 많은 면에서 호감이 가지 않거나 비열해 보인다고 말하면 그는 자기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언제나 뭐든 전부 다 아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해주면서 기뻐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로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친밀하게 행동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대해 마땅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이유를 결코 알지 못했다. 가끔 그는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그를 자주 만났다. 어쩌면 그 사람을 자신의 소설에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교적인 세련된 태도나 습관을 판단할 때 그는 실수를 하곤 했다. 병 밑바닥을 수정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아니 이런 면에서만 그는 아주 순진했다. 그는 세련된 태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이나 문화의 세련미로 말하자면 그는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악수를 할 때 인색하고 조심스러워서 손가락 몇 개만 내밀었다가 빼내곤 했다. 그러고는 소심하게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아껴가며 파이프를 채웠다. 우리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닷없이 무뚝뚝하게 우리에게 돈을 건넸다. 어찌나 갑작스럽던지 우리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몹시 아끼며 그 돈과 이별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사라져버리면 곧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편지를 쓰지 않았고 우리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답장을 보내도 단호하고 차가운 문장 몇 개가 전부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멀리 떨어진 친구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친구들의 빈자리로 인해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당장 자신의 생각 속에 친구들을 묻어버렸다.


  그는 아내도, 자식도, 자기 집도 없었다.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했던 결혼한 누나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평상시처럼 퉁명스러웠고 소년이나 이방인같이 행동했다. 그는 자주 우리 집에 들렀고 얼굴을 찡그린 채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가 이룬 가정을 면밀히 살피곤 했다. 그 역시 가정을 이룰 생각이었지만 그러기 위해 떠올린 방법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더 꼬이기만 했다. 너무나 꼬여 있어서 간단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가 가면서 그는 복잡하게 뒤얽히고 냉혹한 사고와 원칙의 체계를 구축했는데, 그것은 가장 단순한 현실도 구체화할 수 없게 그를 가로막았다. 단순한 현실이 금지되고 불가능해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그 현실을 정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깊어지면서 복잡하게 뒤얽혔고 숨 막히게 이리저리 꼬인 식물처럼 가지를 뻗었다. 때때로 그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고 우리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동정의 말을 꺼내거나 위로의 몸짓을 하기만 해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마지막 몇 해 동안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볼이 홀쭉해졌으며 뒤얽힌 생각들 때문에 피폐해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소년 같은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소심하게 행동하는 습관이나 겸손한 태도, 매일 정확하고 세심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지니고 있던 겸허한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유명해져서 좋으냐고 우리가 물으면 거만하게 냉소를 지으며 항상 예상했던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종종 영악하고 거만하게,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심술궂게 냉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얼굴에서 일순간 번득이다 사라졌다. 하지만 항상 예상했던 일이라는 말은 이미 성취한 일이 그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얻으면 곧 그것을 즐기고 사랑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문학을 속속들이 알았기 때문에 문학에서 찾을 비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학이 전해줄 비밀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제 문학에 흥미를 잃었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우리 친구들 역시 그가 찾을 비밀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로 인해 그에게 우리는 완전히 따분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를 따분하게 만든다는 말에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안다는 말을 그에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일상의 현실을 정복하는 일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난공불락이어서 그는 현실에 대한 갈증과 혐오를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그는 끝없이 멀리서만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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