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때무네 저렇게 저자의 얼굴을 떡 하니 표지에 뒀는지 모를 일이다만 (잘 생기지도 않았잖아요?) 그래도 2019년 번역이니 좀 읽기가 용이할 거라고 생각했으나...으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생산적 직업의 대부분은 야만시대 전기 여성의 일에서 발전했다. 

약탈 문화의 출현 여하는 생산의 상한에 따른다. 생산수단이 발달함으로써 생산 종사자의 생계유지에 더하여 전투를 할 여유가 생길 때까지, 어떤 집단이나 계급에서도 약탈이 습관화하고 정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화에서 약탈로 이행하는 것은 생산에 대한 기술적 지식과 도구의 활용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기가 발달하여 인간이 맹수를 죽일 수 있게 될 때까지 약탈은 실행될 수 없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도구의 발달이나 무기의 발달은 같은 것을 다른 시점에서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 

여자를 소유하는 관습이 야만시대 전기에 여자를 포로로 잡은 것에서 시작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자를 포로로 잡아 점유한 본래의 이유는 전리품으로서의 효용에 있었다. 적에게 여자를 빼앗아 전리품으로 삼는 행위가 여자를 소유하는 형태의 결혼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남자를 가장으로 하는 가족제도를 출현시켰다. 그 뒤 노예의 범위는 여자뿐 아니라 포로나 천민으로 확대되었고, 소유권의 상대도 포로뿐 아니라 일반 여자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약탈적 생활환경에서 벌어지는 남성들의 경쟁이 한편으로는 힘이 지배하는 결혼 형태로, 다른 한편으로는 사유재산제로 연결되었다.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그 두 제도는 분화되지 않았다. 자신의 영웅적 행위를 어떤 계속적 효과로 과시하여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고자 하는, 승리한 남자의 욕망에서 비롯된 두 제도에는 약탈적 공동체에 흘러넘치는 정복욕을 만족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하여 소유라는 개념은 여자에 대한 소유에서 발전하여 여자의 노동 산물에 대한 소유를 포함하게 되고, 사람뿐 아니라 물건에 대한 소유권도 생겨났다. 

소유의 근원적 동기는 타인에게 지지 않는다고 하는 경쟁심이다. 그리고 이 동기는 사유재산제의 발전 과정에도, 이 제도에 관한 사회구조의 모든 측면의 발전 과정에도 계속 작용한다. 부의 소유는 명예를 초래하고, 그 상하의 차별을 수반한다. 재산의 소비와 획득에 아무리 다양한 유인이 있다고 해도 그 이상의 정확한 설명은 없다. 특히 부의 축적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동료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도 자존심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자는 정신 이상자뿐이다. 명백한 예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신앙심을 가진 자들인데,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모두 내려다보는 초자연적 존재에게서 받는 가상의 칭찬에 의존하므로 참된 의미의 예외라고 할 수 없다. 

부를 추구하는 욕망의 성질상 어느 하나의 항목도 충분히 만족될 수 없고, 모든 종류의 부에 관하여 욕망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부가 아무리 널리 또는 균등하게 또는 ‘공평하게’ 분배되더라도, 공동체의 부가 전반적으로 늘어가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욕망은 재산 축적에서 타인을 능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이 금기라고 하는 것의 논리적 귀결로서, 고귀한 출신이지만 부를 축적하지 못한 남자들은 생산적 노동으로 재산을 얻지도 못하게 된다. 결국 그들에게 남겨지는 길은 구걸이나 궁핍밖에 없다. 그리하여 과시적 여가, 즉 유한을 과시하는 것을 좋다고 하는 행동 규범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세상에 침투한 경우에는 이류라기보다 허위의 유한계급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지극히 가난하고 불안정하며 열악한 궁핍 생활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수입을 얻으려고 일에 종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유한계급이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유한’이라는 말은 태만이나 무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시간의 비생산적 소비이다. 첫째, 생산적 노동은 비천하다는 생각에서, 둘째, 태만한 생활을 할 만큼의 재력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시간은 비생산적으로 낭비된다.

예의라는 것은 유한 없이 발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의의 지식이나 습관은 오랜 시간을 들여 몸에 익히는 것이고, 세련된 취미나 예의나 생활 습관은 훌륭한 교육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몸에 익히기에는 시간과 노력과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노동에 쏟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의에 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상류계급의 생활 중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시간도 금전적 이익과는 무관한 학예의 습득에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즉 예의의 가치는 유한 생활을 증명하는 데 있다. 따라서 거꾸로 말하면, 유한이 재력의 평판을 얻는 표준적 수단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유복한 모습을 갖추고자 하는 자는 예의에 정통해야 한다. 

복종을 요구하는 데 익숙해지고 내일의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매우 자신 있는 모습이나 무례한 행동이야말로 신사의 천부적 권리인 동시에 신사를 신사답게 만드는 기준이다. 게다가 대중은 그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다. 그러한 명예를 우월적 가치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비천하게 태어난 평민은 즐겁게 그것에 추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부의 기준이 차차 높아지면,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서 피고용인을 소유하고 활용하는 방식도 더욱 세련되어진다. 재산 생산에 종사하는 노예를 소유하고 유지하는 것은 부와 용맹의 증거가 되지만,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하인을 계속 고용하는 것은 더욱 강고한 부와 지위의 증거가 된다. 이러한 원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언제나 주인의 신변에서 대기하는 하인이라는 계급이 출현한다. 그들의 유일한 일은 그러한 봉사를 통하여 주인에게 그 정도로 장시간의 비생산적인 봉사를 소비할 재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하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피고용인들 사이에 분업이 발생한다. 주인을 위해 재산을 생산하는 집단과, 주인을 위해 과시적 여가를 소비하는 집단이다. 후자는 대부분 아내, 특히 본처가 중심이 되고, 그들이 소비하는 정도를 통해 우월한 재력이 손상되지 않고 많은 금전적 손해를 견딜 수 있는 주인의 능력을 증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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