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 거 아닌지. 어떻게 어머니 본인이 직접 부른 노래를 ㅠㅠ
이 선생님의 치료법 중 특징적인 것으로 초록색 페이스트를 전신에 바르는 치료가 있었습니다. 발가벗은 온몸에 미라처럼 붕대를 감고, 아마도 약초로 만들어졌을 초록색 페이스트를 그 위에 바릅니다. 그리고 나서는 위를 보고 누워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방사선 치료로 쌓인 독소를 디톡스하는 효과가 있다는데, 좌우지간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게다가 그 30분 동안 이어폰으로 선생님의 어머니가 직접 고른 음악을 강제적으로 들어야 했는데, 심지어 그 곡들 중에는 어머니 본인이 직접 부른 노래도 있었습니다. 그것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는 음악 안 좋아하니까 틀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요.
- 뭣이 중한디
이 결정에는 파트너의 설득도 한몫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냐리투 감독한테 직접 음악을 부탁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아? 암이 재발해서 죽어도 좋으니까 그냥 해”라고 하더군요. 세상에, 참 잔인하죠.
- 그렇죠!
애초에 제가 현역 예술대 학생이었으면 “학교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온다”는 말을 들어도 절대 그 수업에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은 그런 녀석들에게 볼 만한 점이 있게 마련이죠.
- 연일 친구들이 올 필요는 없지만, 나머지는 따라하고 싶다.
베르톨루치는 연명 치료를 멈춘 후 마지막 한 달을 집에서 보내며 매일 원 없이 와인을 마시고 의료용 대마도 마음껏 피우며 무척 신나게 보냈다고 합니다. 연일 친구들이 놀러 왔던 모양이라, 그가 떠난 후 그의 아내인 클레어에게 “이보다 더 웃었던 적은 없다 싶을 정도로 실컷 웃다가 즐겁게 갔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 행복한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 역시 범상치 않은 집안
사부로가 한 살배기 아기이던 시절, 그는 그릇이나 접시를 툇마루 돌바닥에 던지며 놀았다고 합니다. 부엌에서 식기를 슬쩍 꺼내와 깨뜨리고는 그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했다고요. 사부로는 ‘쩌억’ 하는 굵직한 소리보다 ‘쨍그랑’ 하는 맑은 소리를 좋아했는데, 그런 소리가 나는 그릇들은 죄다 아리타 도기 같은 얇고 비싼 그릇이었다고 합니다. 더 대단한 것은 사부로의 엄마, 그러니까 제 외할머니의 반응이었는데, 보통은 아이가 그런 장난을 치면 혼낼 법도 한데 할머니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더군요. “아아, 저 애는 소리에 민감하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요. 할머니도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는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 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면 어떤 식사 자리에도 잘 어울림. 감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카게’에서 식사를 하는데 BGM이 자꾸 귀에 거슬리는 거예요. 브라질 팝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재즈 음악까지 마구 뒤섞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너무 식상하고 시끄러웠습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시간이 갈수록 더 신경이 쓰였고, 모처럼의 맛있는 음식을 음미할 수 없을 정도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저는 집에 돌아온 후 주제 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큰맘 먹고 오도 군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만드는 요리는 가쓰라 별궁처럼 아름다운데,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은 트럼프 타워 같아”라고요. 그리고 제 마음대로 선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헐, 새소년에게 먼저 연락하신 거였어!?
그해 8월에는 또 다른 젊은 재능이라 말할 수 있는, 한국의 밴드 ‘새소년’과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여성과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는 남성들로 구성된 트리오로,3 밴드 이름은 한국어로 새로운 소년(新少年)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봄 무렵 뉴욕에서 방영된 한국 채널을 우연히 보게 됐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리더인 황소윤의 기타 연주가 어찌나 멋있던지, 한순간에 팬이 되어버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당시에는 인디 밴드여서인지 좀처럼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출연한 뉴욕의 페스티벌을 보러 갔고, 공통의 지인에게 소개를 받는 등의 경로로 친목을 다지게 됐습니다. 소윤은 무려 1997년생으로, 제 입장에서는 손녀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뮤지션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같은 눈높이에서, 마치 친구 같은 말투로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같이 앨범을 만들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도 종종 나누면서요.
- ㅠㅠ
20220320 내게는 음악이 마루턱의 찻집 같다/아무리 지쳐 있어도 그것이 보이면 달음박질하게 되고,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남은 절반의 등산도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