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도 '본인도 몰랐던 재능'이 펼쳐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은 이렇게도 적용된다. 당시 내게 닥쳤던 불운을 나는 수없이 나누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행운은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내게는 자존심 강한 엄마가 있었다. 그때까지 주부로만 살아왔던 엄마는, 가정이 깊은 수렁에 빠지자 놀라운 에너지로 분연히 일어나 뚜벅뚜벅 집 밖으로 걸어 나갔고, 본인도 몰랐던 놀라운 사업 재능을 펼쳐 보였다. 그렇게 가세를 일으키고 자식들에게 눈을 돌렸다. 한동안 집안의 희망이었으나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한 나는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프랑스로 떠났다. 젊은 시절 잡지에도 낼 만큼 사진을 잘 찍었으나 포토그래퍼의 꿈을 접고 결혼한 엄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내게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버지였다면 나는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 이건 영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존버가 언제나 최종 답인 것이야.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능을 내가 오해하고 있었음을. 영화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력, 독창성이 아니라 잘 버티는 능력임을. 

진짜 버티기는 생계의 문제다. 생계가 문제가 되지 않으면, 진짜 버티기가 아니다. 

- 흑흑, 나도 같은 타입임 (유학생활을 제주생활로 바꾸면 나머지는 다 같다).

나는 유학생활의 경험으로 스스로가 경제적 불안정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알았다. 나는 기분 좋은 어느 저녁의 충동적인 외식 한 번에도 은행 잔고 걱정에 새벽녘 잠이 깨는 종류의 사람이고,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면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기 전까지는 책을 읽어도 집중을 못 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어렵다. 가난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경제적 불안정에 영혼을 잠식당하는 상황이 두렵다.

그게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안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그 일을 하게 될 때가 진짜 시작이다. 

- 호기심은 습관이다.

세상에는 달지 않은 고구마를 푸념만 하는 사람과 왜 달지 않은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 호기심은 습관이다. 살아남기 위해 절실하게 따라 했던 친구의 진지한 탐구 자세가 나를 살렸다. 

- 어떤 편견은 절대 안 없어진다, 나라 불문.

“놀랍게도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었고, 그나마 엄마를 위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걸 언제 봤는지 모르겠어. 그 상태가 최대한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는 바람마저 들더라.”


  그 말들을 들으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카트린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럴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나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올리비에 같은 남편을 두고’라는 생각부터 했을까? 왜 일흔의 나이는 삶을 정리하는 시기라고 생각한 걸까? 무엇보다, 60대의 부부도, 70대의 부부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가슴 서늘한 이별을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랑도 꿈꿀 수 있다고, 나는 왜 헤아려 볼 수 없었을까?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는 것, 의지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또 다른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된다. 

- 음, 나도 이 영국인처럼 생각한다.

언젠가 한 영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진심으로 사람들이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거 알지? 나는 인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 맞아요 맞아요 다 맞아요 ㅠㅠ

매일 밤 우리는 자기 전에 모든 탁자 위의 깨질 만한 물건은 다 치워 두고, 밤새 로미가 배고프지 않도록 자동 급식기에 사료를 채워 두며, 욕실과 서재의 문을 닫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고가 있었다면, 그건 물론 인간인 우리가 부주의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의사를 묻지도 않고 한 생명체를 집에 데려와 운명을 결정해 버렸으므로, 우리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다.



  로미가 내 삶에서 변화시킨 부분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동안 내가 인식해 온 세상이 인간 중심의 편협한 관점이었다는 깨달음이 가장 큰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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