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다른 나라’를 마음에 품고 산다. 그것은 자신이 나고 자란 현재의 땅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다. 자발적인 선택이 대개 그렇듯이, 마음에 품고 사는 다른 장소에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취향과 꿈, 이상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또한 구체적으로 예정된 가까운 미래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곳을 향한 열망과 그리움은, 역설적으로 현재를 더 잘 살기 위한 노력에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어떤 곳이 있다는 사실은, 때로 현재를 살아 내는 데 가장 큰 위로가 되니까. 

평생 수백 번 이탈리아에 간다고 해도, 아니 이탈리아에서 살게 된다고 해도 나는 구경꾼으로 남을 것이었다. 언어란 그런 것이다. 통하지 않으면 관계를 가로막는 유리벽 같은 것. 프랑스도 내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게 진짜 문을 열어 주었으므로, 나는 이 유리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탈리아어가 반복을 매우 꺼리고, 압축적으로 줄이는 방식을 좋아하는 언어임을 알 수 있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명사와 동사변형이 중요해지고, 동사는 시제와 인칭에 따라 매우 섬세하게 달라진다. 대명사도 직접, 간접 그리고 축약법이 어찌나 세밀하게 짜여 있는지 알면 알수록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것이 이탈리아어의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의 수다스러움이 놀랍다. 말을 그렇게 줄여서 하는데도 그렇게 많이, 오래 말할 수 있다니! ‘저녁을 먹는다’는 말 같은 경우에도 한국어 문장이 훨씬 긴데, 평균적인 대화 시간은 한국인이 훨씬 짧을 것이다). 

일상에서 크게 쓰임이 없을 어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미래의 방문에 대한 기약 없는 약속이고, 그러므로 더욱 뜨겁고 순수한 사랑의 의지다.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내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자유자재로 성질을 내는 능력을 익히게 된다. 목청을 의식적으로 높이고 몸동작을 크게 하노라면 이따금 상대방의 얼굴에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표정과 함께 거의 유쾌한 놀라움이 뒤섞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교재에 나오는 예문들에서도 점점 이탈리아인 특유의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격한 감정 변화를 보인다거나, 이웃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점 이외에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모든 대화가 먹는 이야기로 흐른다는 데 있었다.

집중과 집요함이란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게 하는지.


  언어의 궁극적 의미는 소통에 있으므로 외국어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만 단련되고 길들일 수 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계속 체념하고 소통을 포기하다 보면, 때는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스코세이지 여사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요리를 매우 잘하셨나 보다. 1996년에 스코세이지 여사가 펴낸 《이탈리안 아메리칸Italian American》이라는 요리책의 인터넷서점 독자후기를 보면 최근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녀의 레시피를 극찬하고 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이탈리아나메리칸Italianamerican〉에서 어머니에게 특기인 토마토 라구소스의 레시피를 질문하는데, 이 장면을 보면 감독은 어머니의 요리도 무척 좋아했지만, 자신의 요리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결국 일생일대의 중대하고 위험한 일을 하러 가다가 어머니의 파스타에 힘을 받는 이 세 남자의 모습은 스코세이지 감독 본인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최소한 주어와 동사가 온전히 갖추어진 문장으로 말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그렇지 않으면 언어는 성장할 수 없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장인데 조금 더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낑낑거리는 사람에게는 “쉽게 생각하세요. 쉬운 문장들이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실력이 돼야 복잡한 문장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라고 충고했다. 

세상에는 어색하고 이국적인 누군가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려고 애쓰는 사람과 자신에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니니 조금 틀려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타인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기초적인 예의임을, 그러므로 존중의 자세는 상대를 정확하게 부르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인텐시브 수업을 들으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같은 내용이라도 너무 짧은 시간에 진도를 빼면 절대 오래 남지 않습니다. 그게 언어예요. 언어는 시간을 들여야만 실력이 늘어요. 내가 본 인텐시브 학생들이 대부분 같은 어려움을 겪었답니다. 빨리 배우면 빨리 잊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살다 보면 사실상 결심이 전부인 일들이 있다. 배에 올라타기 전에는 파도와 바람의 세기를 예측하기가 힘든 것처럼, 모든 일은 시작된 뒤에야 파악할 수 있고 이후 펼쳐지는 우연과 사건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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