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는 생물 진화의 한 시점을 엿보게 해준다. 생물이 신경계를 통해 혹독한 생존 과정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지 실험해보던 때를 말이다. 신경계를 가동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의 뇌가 체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뇌는 신체의 전체 에너지 중 20퍼센트를 사용한다. 이 상황에서 멍게는 이런 답을 내놓는다. “뇌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 있는 때는 움직일 때뿐이다!” 그 이후에는 뇌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 움직임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라면, 사고는 낭비일 뿐이다. 이에 뇌와 신경계 전체가 재활용 쓰레기 신세가 되어버린다.


약 260만 년 전, 채집 기술에 수렵 기술이 더해지자 일어서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 우리 조상들은 더 넓은 땅에서 머리를 써가며 먹이를 구해야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보다 몸집이 큰 먹이보다 앞서 생각하고 그들을 쓰러뜨려야 했다. 더 멀리 걸어야 하고 더 나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선택의 압력이 인간 종 특유의 진화 이력에 결합됐다. 그 결과, 활동을 할 때 두뇌가 용량을 늘리도록 우리의 생리가 고정됐다고 라이클렌은 말한다. 공간 탐색과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는 신체 활동에 반응해서 새로운 세포를 더하고, 뇌 속 기억 은행의 용량을 늘린다. 먹이 찾기나 사냥을 위해 용량이 추가된 경우, 확장된 용량이 유지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반면에, 기억 은행의 용량을 늘릴 필요가 없으면 두뇌는 에너지 절감을 시작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구조를 없애고, 사용하지 않는 용량은 제거해서 에너지 예산을 환수하고, 그것을 더 필요한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움직임은 정신이라는 개념 자체에 필수적이다.


진실은 뇌, 몸, 정신이 하나의 훌륭한 시스템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움직일 때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작용을 한다.

“오랫동안 달리고 나면 문제에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의 심리 작용이 마커스의 말을 뒷받침한다. 여러 실험이 문자 그대로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진전의 감각을 낳으며, 이것이 우리 자신과 삶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자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전전두피질의 활동성이 일시적으로 낮아진다는 점이다. 아마도 뇌가 움직임과 방향 찾기에 관련된 회로로 혈류를 재배치하고, ‘사고’에서 멀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전전두피질은 사고와 기억의 숫자를 가장 실용적이고 확실한 정도로 제한한다. 이 때문에 ‘틀’을 조금만 헐겁게 만들면 정신이 정처 없이 떠돌게 할 수 있다. 또한 뇌의 ‘대화방’ 안에 있는 조력자가 끼어들어 완벽하게 틀을 갖추기 전에, 새로운 연결을 형성할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전에는 떠올리지 못했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비축된 여분의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갖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아널드 슈워제네거처럼 될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인간으로서 가능한 만큼 힘과 탄력성을 유지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유지에 힘쓰고 계속 움직인다면 우리의 조직이 신경 시스템에 보내는 메시지는 이렇게 변화할 것이다. “긴장 풀어. 모든 게 내 통제 안에 있어.”


감정의 격변은 사람에게 정서적 흉터만 남기는 게 아니라 근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간답게 움직여라: 신체가 만들어진 목적에 맞는 동작을 익혀라. 상황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달려가고, 올라가고, 헤엄치고, 뛰어오를 수 있게끔 움직여라. 헬스장은 잊어라. 옛 조상들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을 배워라.

일본에서는 전후의 문란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자정 이후에 무도를 금지했는데 2015년에야 해제되었다.

현재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는 두뇌를 이전에 일어난 일을 근거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예측하는 ‘예측 기계’라고 생각한다. 이후 뇌는 그 예측을 우리의 행동과 조치를 인도하는 데 사용한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모르텐 크링겔바흐Morten Kringelbach에 따르면, 우리가 규칙적인 박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음에 나올 박자를 쉽게 예측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측이 맞으면 보상과 즐거움에 관련된 뇌 호르몬, 도파민이 약간 분비된다.

키, 성별, 나이, 몸무게에 관계없이, 몸은 2헤르츠의 주파수로 공명했다. 1초에 두 번 떨리는 진동을 생각하면 된다. ‘2헤르츠’라는 마법의 숫자는 우리가 춤추는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헤르츠는 분당 120박의 속도에 해당된다. 서구의 거의 모든 팝과 댄스 음악의 박자이기도 하다. 놀라운 우연 아닌가? 또한 실험실에서 메트로놈처럼 무릎을 두드려보라고 청하면 사람들이 가장 정확하게 맞추는 속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모든 인류는 같은 박자에 맞춰 춤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목표에 관련된 다양한 뇌 부위의 뇌파가 동기화되고 박자를 맞추면서 뇌 활동의 배경 소음 위로 부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음악이 그토록 쉽게 우리의 주의를 끄는 이유다. 모든 처리 역량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풍부한 감각 경험에 사용되면, 미래에 관해 조바심을 내고 과거를 걱정하는 정신 작용은 모두 사라진다. 같은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을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인간이 이용했던 방법이다. 원시시대의 의식이나 가무를 즐기는 열정적인 문화에서 나타나는 무아지경의 경험을 떠올려보자.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남는다.

내이가 즐거움을 감지하는 뇌 회로인 변연계에 바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네, 롤러코스터,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고 언덕을 미끄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모든 행동이 고속으로 돌진하는 것과 관련된다. 공중을 날면서 “와!”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초민감성 전정기관과 뇌의 쾌락 지대 사이의 긴밀한 연결 때문이다. 토드는 “이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몸을 좌우,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정기관을 가지고 놀이기구를 타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 일단 그런 감정을 맛보면, 계속 반복하고 싶어진다.

그루브가 있는 당김음 비트는 더 신이 난다. 순간적으로 우리를 균형에서 벗어나게 했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비트가 기대에서 벗어났다가 마침내 그것이 모두 계산되었던 것임이 드러날 때 우리는 웃는다. 비트와 어긋나면 잠깐 동안 불안이 치솟는다. 하지만 아무 이상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안도의 물결이 불안을 재빨리 대체한다.

인간의 걷기는 ‘통제된 넘어지기’라고 묘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춤은 더하다. 계속해서 넘어지지 않게 자신을 구하는 일은 좋은 기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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