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음악을 듣는 일, 하루 분량의 음악은 영혼을 지탱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하루 분량의 음악’이 ‘미덕’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런 단어들이 연상시키는 의무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한편으로는 클래식 음악이 주류 문화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우리를 더 지적이고 더 세련되고 더 교양 있게 만들어준다는 이유로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한다’라는 희미한 문화적 각성이 존재하는 시대다. 딱히 도움이 되는 생각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이 다른 종류의 음악보다 ‘우월하다(아주 잘못된 생각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클래식 음악은 특정 배경, 특정 교육 수준, 특정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로 남아 있어야 한다(가장 나태하고 역겨운 수준의 기회 강탈이다)고 내심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클래식 감상의 이유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상충하는 메시지 가운데에서(이런 메시지들은 계급, 교육 정책, 그리고 미디어 환경을 둘러싼 훨씬 더 큰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그 중심에 있는 것, 바로 음악을 간과했다. 우리를 황홀하게 하고 감동시키고 기운을 북돋아주고 평온하게 만드는 음악, 우리를 울고 웃고 생각하고 숨 막히게 만드는 음악, 뭔가를 가르쳐주고 의문을 갖게 하고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음악 말이다.

바흐의 두뇌는 슈퍼컴퓨터 같았다. 그는 여러 일에 매여 있으면서도 3,000곡 이상의 작품을 작곡했고, 두 번 결혼해 스무 명의 자식을 키웠다. 그는 모국인 독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악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 음악의 모든 요소를 받아들였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요소들을 결합시키고 여기에 (결정적으로) 자신만의 비법을 첨가했다. 바흐가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 기술적 정교함과 위대한 감성을 결합하는 방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바흐의 음악에 나타나는 복잡하고 정교한 패턴을 보고 그를 ‘수학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는 강렬한 기쁨과 거친 슬픔을 알고 있었다. 인간 마음의 예측 불가한 변화를 그보다 더 잘 조율하는 작곡가는 결코 없을 것이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다. 그가 없었다면 재즈, 펑크, 힙합, 테크노, 하우스, 그라임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후에 나타날 모든 음악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현명하고 재치 넘치며 풍부하다. 그의 음악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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