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조건은 혼자서도 제정신을 유지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자아의 강인함과 독립성, 온전함을 갖추는 것이다. 이 조건은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랑받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사랑은 자발적 행동으로, 여기서 자발성은 말 그대로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아가 불안하고 나약하면 자기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


  이 사실은 사랑이 누구를 향하는지 따져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증오의 반대다. 증오는 파괴하고픈 열정적 욕망이다. 사랑은 자기 ‘대상’의 열정적 긍정이다(‘대상’이라는 개념에 의도적으로 따옴표를 붙인 것은 사랑의 관계에서는 ‘대상’이 대상이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대상은 주체의 상대가 아니며 주체와 분리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격정’이 아니라 자기 ‘대상’의 행복과 발전, 자유를 위해 매진하는 능동적 노력이다. 자신의 자아가 불구가 되면 이런 열정적 긍정이 불가능하다. 진정한 긍정은 항상 강인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손상되면 사랑은 양가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자아의 강한 부분으로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손상된 부분으로는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의 조건은 베풀 수 있는 개인의 힘이다.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을 만들어내고자 하기에" 긍정이자 생산성이다.

이웃을 인간 존재로 사랑하는 것이 덕목이라면 왜 자신도 사랑하면 안 되는가? 이웃 사랑을 천명하지만 자기애는 금기시하는 원칙은 나를 다른 모든 인간 존재에게서 떼어낸다. 하지만 인간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경험은 인간 존재로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인간 연대란 없다. 나를 배제하는 원칙은 그 자체가 모순임을 입증한다. 성경에도 있듯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라는 생각은 자신의 온전함과 유일함에 대한 존중, 자기애와 자신의 이해는 타인에 대한 존중 및 사랑, 타인의 이해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과 다른 의미가 아니다. 자기애의 발견은 이웃 사랑의 발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자신이 근본적으로 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감정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대다수는 자신과 타인을 향한 만성적 증오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남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 같은 감정을 ‘입양’한다. 그래서 남들이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는 남들을 좋아하고 친절하다고 느낀다. 이런 무비판적 ‘좋아함’은 완벽히 피상적이며, 근본적인 애정 결핍을 보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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