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비하하는 기질, 몽상에빠지는 습성, 습관적인 증오심, 남 하는 대로 따라하려는 경향, 현혹되기 쉬운 경향,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비롯하여 극심한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다양한 현상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단결의 동인이자 무모함을 부추기는 배우다.

죽음과 죽임이라는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빠질 수 없는 연극적 요소는 특히 군대의 경우에 명백하다. 군대의 제복, 깃발, 기장, 행진, 음악, 복잡한 예법, 제식 등은 군인들이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불가항력적 현실을 가리기 위해서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논할 때 전장(theatre of war), 전투 무대(battle scenes)라고들 말한다. 전투가 벌어지면 군 지휘자들은 한결같이 병사들에게 전 세계의 이목이 귀군들에게 집중돼 있다. 조국 선열들이 제군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후손이 제군의 이야기를 듣게 될것이다. 같은 말로 사기를 북돋운다. 위대한 장군이라면 연설로 경천동지할 줄 안다.
영광은 하나의 연극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청중을 뚜렷이 의식하지 않는다면 영광을 위해 싸울 일도 없다.

쾌적한 생활은 근본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상식, 실용적 관점이라고 부르는 것에 매달린다. 아닌 게 아니라, 이는 현재 상태에 이골이 날 만큼 익숙한 태도를 일컫는 이름일뿐이다. 쾌적하고 안전한 생활이 얼마나 확고한지, 현재의 상태와 다른현실이 설사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해도 막연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듯 혼란이 일어났을 때 정작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매달리며 몽상가처럼 구는 것은 이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반면에 현재를 거부하고 오로지 앞으로 일어날 일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위험의 싹이나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자신에게 유리한 점 따위를 간파할 능력이 있다. 따라서 좌절한 개인과맹신자가 현상유지를 바랄 이유가 있는 사람들보다 뛰어난 예언자가된다. "미래가 요구하는 해결의 실마리는 영혼이 섬세한 사람들보다는광신자가 쥐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대중운동의 현재를 비하하는 태도가 좌절한 사람들의 성향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좌절한 사람들은 현재에 관해서라면 좋은 것까지도 깡그리 헐뜯곤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서 엄청나게 즐거워한다는 사실이다. 불만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저열하고 천박한지 장황하게 떠듦으로써 패배감과 소외감을 달래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우리 인생만 엉망이 아니다. 이 시대에는 아무리 행복하고 성공해봤자다 하찮고 허튼 인생이다. 좌절한 사람들은 이렇듯 현재를 비하함으로써 막연하게 평등 의식을 얻는다.

대중운동이 벅찬 것, 불가능한 것을 옹호하는 것도 좌절한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다. 평범한 일상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위장하는 장치다. 가능한 것을 시도하다 실패한다면 순전히 자기 잘못이지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그 임무가 막대한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편이 가능한 것을 시도할 때보다 신뢰를 잃을 위험이 적다. 그렇기에 평범한 일상에서의 실패가 종종 과도한 담대함을 낳기도 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머리로 이해한 강령은 그 위력이 삭감되게 마련이다. 무언가를 이해하면, 그것은 마치 우리 안에서 시작된 것처럼느껴지기 마련이다.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의 특이한 점은 사기 치는 경향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잘 믿는 사람이 거짓말도 잘한다는 속성은 어린이한테서만 나타나는 성질이 아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혹은 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남의 말에 잘 속는 순진한 기질과 야바위 기질을 동시에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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