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은 일로 자기 구실을 할 수없는 지경으로 괴로움을 당한다면, 그것이 하다못해 장의 통증이라 해도……사람은 당장 세계 개혁에 나선다"고 소로는 말한다. 실패한사람들이 실패의 원인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습성은 이해가 간다. 희한한 것은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선견지명과 투지, 검약 습관, 그밖의
‘훌륭한 자질‘에 아무리 자부심이 강하다 해도 내심은 그 성공이 여타의 여건과 운 좋게 결합한 결과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백발백중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늘 자신감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에작용하는 모든 요소를 안다고 결코 장담하지 않는다. 외부 세계가 그들에게는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는 장치이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한 손대기를 꺼려한다. 이렇듯 변화에 대한 저항과 변화를 향한갈망은 동일한 확신에서 나온 것으로, 열렬하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부유층과 빈곤층, 강자와 약자, 모두가 많이 가졌건 가진 것이 없건 미래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품을 수 있다. 현재가 너무나 완벽해 보여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곤 현재가 미래에도 지속되는 것뿐일 때, 변화란 악화를 의미할 따름이다. 따라서 뛰어난 성취를 거둔 사람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급격한 개혁에 적대적이기 마련이다. 노약자들의 보수성 또한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 그들은 쇠락의 조짐을 찾는 사람들이며,
변화라면 어떤 것이 되었건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받아들인다. 비참한 빈곤층도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미래는앞으로 가게 될 길에 파묻힌 지뢰처럼 느껴진다. 아주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사서 고생하는 꼴이다.
희망을 품은 사람들을 보자. 원대한 희망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열정적인 지식인이건 땅을 갈망하는 농부건 일확천금을 바라는 투기꾼이건 냉철한 상인이건 자본가건 맨손의 노동자건 귀족 지주건 누구라도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들은 모두 현재를 거침없이 살아가며 필요하다면 현 상황을 파괴하고 신세계를 창조한다. 이렇듯 혁명은 특권층에의한 것일 수도,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16세기와 17세기 잉글랜드의 종획운동은 부자들이 일으킨 혁명이었다.

사람은 자기 일이 신경 쓸 가치가 있을 때라야 신경 쓴다. 그렇지않을 경우, 무의미한 자기 일은 팽개쳐두고서 남의 일에 신경 쓰게 마련이다.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것은 험담하거나 꼬치꼬치 캐묻거나 참견하는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공동체나 국가, 인종 문제에 대한 열띤 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기 문제는 회피하면서 이웃의 어깨에 매달리든목을 조르려고 덤벼들든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