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죽도록 상상해 온 ‘여자’가 ‘어머니였다. 향수에 젖은 환상으로 우리 삶의 명분을 바라보는 이러한 현상을 재조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작 우리부터가 어머니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온갖 활개 치는 환상을품고 있었으며, 한술 더 떠 그에 못 미치거나 실망을 주고싶지 않다는 욕망을 저주처럼 달고 있었다. 사회 구조가상상하고 정치화한 ‘어머니‘는 망상임을 미처 납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은 어머니보다 이 망상을 더 사랑했다. 그런데도 우린 이 망상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에 죄책감을느꼈으니, 이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우리 아이들은 물론이요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간 발품 팔며 자력으로 마련해 온 틈새 영역이 자칫하다가 흙 묻은 우리 운동화 주위로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염려한 까닭이었다
사랑과 관계된 만사가 그렇듯 아이들은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을 행복에 더해 그에 못잖은 불행을 안겨 주었는데, 그렇대도 21세기 ‘신가부장제’만큼 우리를 비참한 수렁에 몰아넣지는 않았다. 신가부장제는 우리에게 수동적이되 야심 찰 것을, 모성적이되 성적 활력이 넘칠 것을, 자기희생적이되 충족을 알 것을 요구했다. 즉 경제와 가정 영역에서두루두루 멸시받으며 사는 와중에도 우리는 ‘강인한 현대여성‘이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만사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일상사였지만, 정작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