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은 미개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의 운명론은신화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정교해서 운명론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나의 예만 들자. 사회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DNA의 자기 복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과학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지만 극단적 운명론이다.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이라면 여전히 ‘운명 격파‘ 나 그와 비슷한말에서 영감을 찾겠지만, 이 새로운 운명론은 인간과 운명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렇다고 패배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의 이타적 행위나 문화 창조 등의 행위까지도 모두 유전자의 전략에 따른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거꾸로 우리의 이타적 행위나 문화 창조 행위 등이 유전자의 전략을 역이용한 것은 아닌지 물을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운명에 패배하면서 운명 위에 인간의 위엄을 세운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2015. 3. 23.) - P116
상투적인 글쓰기는 소박한 미덕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식민 세력에 동조하는 특징을 지닌다. 자신의 삶에 내장된 힘을 새롭게 인식하려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늘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때문이다.
예술가는 남이 가지 않는 다른 길을 간다는 말이 있다. 그다른 길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추상적인 것도 아니다.
당신이 저 상투적인 ‘살랑살랑‘ 대신 다른 말을 써 넣는다면 당신은 벌써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벌써 예술가다. -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