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퇴근 길에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씨디 플레이어가 있어도 돌아가지 않은 지 오래인 카 스테레오. 울며 겨자먹기로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말이 많아 시끄러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적막함을 달래기에는 또 그만인 것이다)

 

대체로 무심결에 듣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하는 법.

어제는 좋아하는 작가 인숙의 이름이 나왔다.

황인숙이 친구에 대해 에세이를 적은 것을 라디오의 구성작가가 읽은 모양이었는데,

내용인즉슨,

머릿속이 복잡하고 심오할수록 친교를 나누기가 힘들며,

오래 잘 지내오다가 불화가 생기는 관계에서 그 원인을 오해에서 찾기보다는 이해에서 찾는 편이 낫다는 것.

언뜻 납득이 안 갈만한 소리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라는 거다.

사람들은 어릴 때는 자신만의 주관이나 호불호로 벽을 높게 세우지 않으니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 오해를 할 일도 이해를 할 일도 그다지 많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만의 세계나 주관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그런 자신의 생각에 끼어 맞추고서 그를 이해한다고 믿고 있다가 나중에 아니라는 것을 발견, 즉 제대로 이해를 하게 되는 순간 그사람을 도저히 친구로서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지거나, 그러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구 관계가 끊어지는 진짜 이유는 이러한 통찰에 따른 진정한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러니 긴 세월 동안의 오해를 풀 실마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래서 주변의 중재나 본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생긴 불화는 씻을수도 나아질 수도 없다는 것이 어른이 되고나서 겪는 비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어느 정도 선에서 오해를 하고 있어야만 관계가 유지 되는걸까.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인 건 아닐까.

아니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통찰로 상대를 이해한 후에 맺는 친구관계여야만 영원해지는걸까.

새끼손가락 걸고 영원하자던, 그런 맹세는 진정 순수한 어린 영혼 사이에서만 실현되는 걸까.

 

황인숙의 에세이가 맺는 결론에 대해 반박할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이 끝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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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7-01-1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친구 그동안 잘못봤다 싶으면, 다시 이해하기 시작하면 안되는거여요? (저 너무 단순한가요? ^^)

치니 2007-01-12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단순하게 그리 생각하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되면 다시 이해하기 시작한다는게 무척 어려운거 같아요.

콩스탕스 2007-01-1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몇년사이 좀 혼란스러웠어요.. 20년이 넘게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걸, 친구가 달라졌다고 생각했었거든요..내가 아는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그냥 가족같은 정으로 여전히 그애를 좋아하지만..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그애가 그립기도 합니다..

치니 2007-01-1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스탕스님, 처음 뵙는 거 같네요. 반갑습니다.
달라졌다...라는 말에는 참으로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죠. 듣기에 따라서는 억울하기도 할테고. 아무튼 어른이 되면 관계에 대해 늘 어려워만 하게 되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