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자, 여기 이런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 그 누군가는 이 책에서는 동화 작가인 마샬 프랜스라고 나오지만 - 신만이 알 수 있는 인간들의 운명을 저절로 알게 되어 우리의 운명을 설정하고 그대로 살게 한다는 가정입니다.

(미안해요, 이런 가정을 미리 알고 읽으면 이 책의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만끽하긴 글렀겠네요)

사람들은 때때로 한숨을 쉬면서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타로점이나 별자리 따위에 기대어서 미래를 점 쳐보고 싶어하지만, 정말로 속으로도 미래를 몽땅 미리 알아서 언제 죽는 지 어떻게 죽는 지까지 알고 싶어할까요?

저에게 묻는다면, 단연코 노우.

그런데 이 책에는 그렇게 만들어주는 작가가 있고, 그것을 지키려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산다면, 각자의 인생은 허망한 꿈을 부풀릴 일도 없이, 평안하기 그지 없으며, 죽음이란 것도 천국이냐 지옥이냐 따위의 이승 너머의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전혀 겁날 일이 없다는 논리로 순응하는 듯이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그 설정에서 조금만 변경된 일이 일어나도 1초가 불안해서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이죠.

누군가 보여준 책의 한 페이지에, 내가 내일 오후 몇시 몇분 몇초에 회사에서 오는 길에 누구 누구의 차에 치여서 죽게 되어 있다는 게 적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꼭 맞는다는 것을 잊을 수 없는데 오늘이 신날 수 있을까요. 오늘 내 있는 힘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때문에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아무리 장밋빛 인생이 펼쳐져 있대도, 안다면 무지무지 재미없는게 삶이 아닐까요.

이런 생각이 죽 드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작가는 꽤 역량이 있어서 처음부터 이런 음모론을 꾸미는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저 정신적으로 좀 어려움을 겪는 어떤 청년이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고 어떻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는지 보여주는데만 반 이상을 할애 하고 있으니, 중반 이후에는 아차 속았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어느 정도 서성대면서 을씨년 스러운 기분이 드는 어두운 골목 길 가로등 아래 선 기분이 되어버려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황당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스려야 좋을까, 기묘하고 의뭉하기까지 한 이 작가의 소설가적 역량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이뻐하지 않게 되는 이 심정을.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다음에 이 작가의 책이 또 나온다면 덥석 집어들긴 어렵겠어요. 책을 읽고 또 다시 이런 기분이 된다는건 유쾌한 일이 아니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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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6-12-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 없다면. 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저 저녁밥을 먹고, 빌려다논 비디오를 보거나, 읽다만 책을 읽고,
커피를 충분히 마시고, 여전히 아이를 십분이라도 일찍 재우려고 하겠지..
라고 생각했어. 어쩌면 약간 지루해 하면서 말야..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것처럼 살라는 말은 오류가 너무 많아.
우리가 무얼 하고, 무얼 안하고는. 오늘 다음에 내일이 있기 때문일 거야..

치니 2006-12-2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iny / 인간이란 내일이 있는데도 없는것처럼 행동하기에도, 내일 죽을 건데도 마치 안그럴것처럼 행동하기에도, 모자라고 약한 존재라서 그런것 같아.
그나저나 내가 어제 네이트온에 주절주절 적은것 읽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