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이앤 아버스 -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퍼트리샤 보스워스 지음, 김현경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책의 크기와 두께만큼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책의 질량의 부담은 한 사람이 살다간 인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한다면 크기와 두께, 그리고 무게가 한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에는 다이앤 아버스의 명작을 볼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앤의 사진을 접하면서 텍스트가 매울 수 없는 부분을 만회할 기회와 다이앤의 사진철학의 이해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텍스트가 다이앤의 진정한 사진 세계를 왜곡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낯선 독자와의 거리를 친밀하게 만들지 못하고 넓혀 놓았다는 생각이다.
“좋아요!”
“모델처럼 안 보여요.”
다이앤은 한 초보 모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줄의 말이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 와서 그녀의 삶을 대변해 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상적인 사람들도 정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특히 시각적 권력과 물질적 권력을 가진 이들도 그 면면에서 흘러 넘치는 영혼의 상처와 빈곤한 정신의 소유자일 뿐이라는 것을 다이앤은 보려 애썼고, 보여 주려 애썼다. 외모에서 풍기는 혐오와 물질 부족에서 오는 비정상인들보다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비참하리만큼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끄집어내고자 했다. 그랬기에 “모델처럼 안 보여요.”가 “당신은 정상이 아니에요.”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어 가는 동안 가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때론 다이앤과 함께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되어 가는 동안 클라이맥스라고는 없었던 삶을 산 다이앤 아버스. 금지된 세계의 탐험가로 치러야 했던 대가가 인생의 빠른 종결의 독촉이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이앤이 그녀의 부모로부터 금지된 세계의 철저한 단절을 요구받아 왔듯이 독자에게도 철저히 그녀의 작업세계, 사진 세계를 그녀의 책으로의 만남을 금지시켰다.
“아기일 때에도 다이앤은 사람을 그냥 보지 않았어요. 보며 생각했어요.”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이란 걸 모르고 자란 그녀에게 유일한 부족함과 벗어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의 부족함과 눈앞에 존재하는 가족이 언제나 껍질뿐이었다는 것이 그녀 안에 채울 수 공허함으로 남겨졌다. 그리고 어린시절 그녀의 숨통을 트여 주고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사랑하는 유모와의 이별은 평생을 고독과 외로움과 우울증과의 사투를 벌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은 다이앤을 더욱 수줍고 얌전하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행한 결과물을 끊임없이 확인하도록 하는 성격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녀 자신의 야심을 깊이 인지시켰고, 자기 안에 있는 아주 특별한 무엇이 밖으로 표출되어야 한다고 자각시키기도 했다. 그것이 금지된 경험, 거침없는 솔직함의 사진으로 대체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두려움은 그녀를 일깨우고 ‘느끼게’ 만들었으며, 나른함과 우울을 깨뜨렸다. 무서움을 극복함으로써 어머니가 가르쳐 주지 않은 용기를 발달시켰다. 그녀의 최고의 사진들은 전복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에서 이러함을 엿볼 수가 있다.
한편 그녀가 금지된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 왔다. 부모가 보여준 거짓으로 세련되고 위선적인 모습과 강요된 금지 등이 그녀로 하여금 더욱 금지된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녀의 학창시절 친구의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다이앤은 조금 과감하고 위험한 일들을 언제나 앞장서서 ‘맨 처음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다이앤은 에티컬 컬처 스쿨에서 가장 대담한 축에 속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두려웠다‘고 믿었다.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고, 무척 흥분하고 겁에 질렸더라도‘ 애써 용감해지려고 했다.”
부모로부터 강요되고 억압되었던 자신의 일상을 집 밖에서 분출시키는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다이앤의 행동은 좁고 작은 사람의 세계에서 넓고 큰 세계로의 입문을 예고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그녀는 서서히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숨겨진 것들의 발견을 향한 욕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인간 사회에서 제명 당한 이들을 자신의 어린 시절과 동일시하는 경향은 책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선명하지 않았던 어렸을 때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겼으며, 성인이 되어 아니 이미 어린 시절에 정체성과 주체성이 확립된 자신이 성인이 된 뒤에 다소 잊혀졌던 흐릿해진 기억의 영상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끌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다이앤이 학생 때 유일하게 친구로 여긴 소녀가 말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바로 “믿을 만한 위대하고 슬픈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고 소망한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다이앤이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고등학교 렌로 선생의 사무실 문에 붙어 있던 비극적인 이미지의 아프리카 탈 사진의 영향이 컸다. 그 사진은 크고, 보기 흉하고, 기괴했다고 한다.
적나라한 무일푼의 현실 앞에서 다이앤은 궁핍한 살림의 타계책으로 16살에 만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알렌과 함께 패션 잡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기형인들을 찍기 전에 시작했던 패션 잡지 사진은 아름다워야 했고, 이상 세계를 그려야 했고, 누구보다 무엇보다 화려함을 잃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다이앤은 이 일에 갈수록 매력을 잃었다. 술수와 중상모략, 배신과 매춘이 판치고 의도된 패션 사진에 실증과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유한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그녀이기에 패션 잡지 일만큼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끊을 수가 없었다.
패션 잡지에서도 발굴의 실력을 보여 주어 사진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녀는, 동료들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피사체들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난쟁이와 거인 괴짜 등 극단적인 사람들을 인간애가 넘치면서 그 누구보다 더욱 따뜻한 애정의 시선으로 사진에 담아 놓았으며,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의 위엄을 보이고자 했다. 그녀는 이상하고 슬픈 사람들의 고립과 고독이 낯설지 않았다고 말한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이 말은 유명세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과는 대조적이었다. 다이앤은 유명인의 내면과 외면에서 존재하는 자기과시와 모순, 즉 양면성을 탐색한 결과물만 끔찍하게 남겨 놓을 뿐이었다.
다이앤은 기형인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에 더욱 고통스러워했고, 무엇이 동물적이고 무엇이 인간적인가에 자신의 삶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를 놓고 자신의 삶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고, 이 모든 고통과 실험과 고민에 대한 결론은 없었으며 확신도 없음을 인정했다.
다이앤의 영원한 아군이었던 알렉스가 다이앤에게 처음 했다는 말은 “제대로 보면 모든 형태가 아름답다.”는 괴테 인용문이었다. 이 말은 그녀를 모호성과 모순에 사로잡히게 했으며, 세상을 해석하기보다는 검사하게 만든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바로 고등학교 졸업앨범 다이앤의 사진 밑에 적혀 있었던 “다이앤 네메로브. 생명의 나무를 흔들어 들어 보지 못한 열매를 딸 것이다.”는 마치 다이앤의 운명을 예언한 듯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의 사진 세계는 기만적으로 단순하고, 독특한 접근법으로 모든 촬영대상을 그들이 누구든지에 상관없이 평준화시키고, 기형인이나 정상인이나 어떤 의미에서 똑같아진 것이라고 했다. ‘기형’이니 ‘정상’이니 하는 용어는 그녀의 문맥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다이앤은 그 두 부류를 애써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함 때문에 다이앤은 돈은 거의 못 벌었지만, 초상 사진에 유령 같은 심리적 진실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사진가로 잡지 아트디렉터들 사이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다만 아이러니 한 것은 죽기 전까지 기형인을 찍어 왔던 그녀가 전형적인 사람들을 찍는 문제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기형인 전문 사진가라는 꼬리표를 떼려고, 평소에 찍고 싶던 우아한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앤의 이러한 행동은 지속적인 자기 부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한 시대의 상류사회와 하류사회를 모두 경험한 그녀이기에 그 어떤 부분도 떨쳐버리기 힘들었으리라 본다. 상류층이 갖는 풍요로움을 경험했고, 때론 버릴 수 없는 동경으로 그녀는 가끔 자신의 처지를 혼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결에 하류 그것도 금지된 인간계의 동굴 속으로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 정체성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서 그녀가 남긴 업적은 인간계의 편협함이 아닌 풍성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