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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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공부꾼을 만났다.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를 어린 나이에 공부의 단맛에 푹 빠졌던 노학자를 만났다. 그러나 공부를 향한 열정의 길은 험난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중 다행은 전란 통에 공교육제도가 완고하다기보다 다소 융통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학구열이 높은 저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초등학교 5학년을 다닌 뒤 중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억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좋아하는 공부를 못하게 된 것도 있으려니와 늘 우수한 성적을 자랑해온 저자는 집안 일을 하라고 하고 자신보다 못한 다른 사촌들은 버젓이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만?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가?를 되씹어 보아도 억울할 뿐이다. 도통 할아버지의 의중을 알 수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소 풀먹이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달랐다. 소와 함께 들로 나갈 때마다 한손에는 언제나 책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지금 성공한 이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강한 열망과 포기할 줄 모르는 자세는 저자에게도 있었다. 학교를 가지 못해도 일상의 체험을 통해 수학을 그리고 과학을 정확히 말해 물리학을 터득해 나갔던 것이다. 오히려 공교육에서 배운 것보다 더욱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햇살이 비추는 각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대입하는 열정을 보인 것이 한 예라 하겠다. 

일상생활에서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켜 나갔던 저자는 관찰자적 입장도 시종일관 유지해 나갔다. 물음을 갖고 그 물음에 답을 찾으려 애썼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력 또한 함께 싹터 나갔다. 학교공부는 이젠 틀렸구나 싶을 때 아버지가 집을 떠나 멀리 청주에 직장을 잡게 되었고,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한 어머니와 저자 그리고 여동생은 시골 집에 그대로 살아야 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저자 어머니가 할아버지와의 협상을 통해 작은아버지가 설립한 고등공민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당시 고등공민학교는 정식 중학교가 아니었기에 초등학교 졸업을 못했어도 입학이 가능했다. 

이렇게 저자의 인생이 끝나나 싶다가 희망의 끈이 다시 연결되는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고, 그것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계신 청주로의 이사를 결행한 것에서 확실해졌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저자를 정식 중학교에 보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떻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는데.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될 얘기겠지만 저자는 감곡중학교에서 낸 시험을 치렀고 그리고 2학년 2학기부터 편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식 중학생이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즐겼던 터라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과정을 매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 최고의 성적을 거둬 학교 대표로 도지자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청주 최고의 학교라는 청주고를 뒤로하고 오로지 물리를 활용할 수 있는 기계과에 가기 위해 청주공업고를 선택했다. 청주공업고의 입학을 위해 치른 시험에서 저자는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만점이 500점이었고, 저자는 만점에 가까운 1등을 했고, 2등과의 성적이 100점이나 차이가 난 것이다. 청주공업고의 경사는 신화를 낳았고, 그 신화는 저자가 다녔던 감곡중학교에 새로운 신화를 하나 더 보태주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고 될성부른 나무는 꼬이는 새부터 다르다던가. 공업고 담임선생은 저자의 뛰어남을 알아봤고, 각별히 신경을 써 과목을 보충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보는 물리와 영어 교재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이해했다는 저자의 말에 다시 한 번 청주공업고는 신화가 된 학생을 더욱 신화적 인물로 여기게 되었고, 당연히 오랫토록 학교의 자랑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로 고등학교까지 간 저자는 드디어 학문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학자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장회익 교수의 가치관과 학문적 지향의 길이 이때부터 서서히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진 틀을 고등교육을 통해서 학문적 토대를 담기에 이른다.

장회익 교수는 6년 전에 솔출판사에서 나온 <삶과 온생명>으로 먼저 만났다. 그리고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과학과 메타과학>을 통해 만났다. 하지만 이 두 책 모두 이해하기엔 다소 힘이 부쳤다. 생소했던 온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TV매체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되었고, 확인차 책을 읽게 되었지만 상당히 어려워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어디까지 생명이라 할 것인가?에 한글의 최소단위가 형태소인 것처럼 낱생명 즉 온생명에 해당하는 것이 최소단위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저 과학의 한 부분이라고 하기엔 다소 철학적인 부분과 뉴에지적 정서가 강했다는 느낌이다.

공부로의 길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 역시 중간 이후부터는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이 책 <공부도둑>은 저자의 공부철학과 전공분야의 애정과 애착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설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책을 절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다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서 다소 흥미진진한 유년기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후반에서는 전공분야에 대한 학자적 입장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배움의 길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준 책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으련다. 그 어떤 난관이 있다 해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공부로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려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의 반성계기를 삼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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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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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어떤 전쟁도 환영할 생각이네. 이 나라에는 전쟁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세상에는 가치 없는 생명들이 얼마든지 있단다.”
- 제임스 멜런의 아버지(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거부)

“검둥이를 쏴 죽인 백인은 자유롭게 길거리를 활보한다. 반면 돼지고기를 훔친 검둥이는 10년 간 쇠사슬에 묶인 채 중노동을 해야 한다.”
- 토머스 포춘(<뉴욕 글로브> 지의 편집장 )

“이 지구상에서 지금 바로 이 순간, 미국인들이 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피비린내나는 행위를 했던 나라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 프레드릭 더글러스

위의 네 개의 글은 미국의 건국이념이자 현재 미국을 이끌고 있는 신념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미국 역사의 초석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강력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 피를 뿌리고 인명을 살상하는 등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로 인권유린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지금의 미국을 만든 기반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 내 양심 학자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의 축약본인 이 책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는 미국이 얼마나 간악하고 졸렬한 방법으로 민중을 짓밟고, 나아가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미국이야말로 침략과 약탈 그리고 피의 전쟁을 일삼았으며, 살인과 살육, 교란과 이반, 억압과 약탈 등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각종 추악한 행위를 범했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정치가, 사업가, 부동산 투기자 들.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장본인이자 민중의 인권유린의 중심에 선 자들이다. 바로 미국 역사의 뿌리들인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거미줄 식 안전장치가 필요했고, 민중의 희생이 필요했다. 

바로 이 책 143쪽에 등장하는 강도 남작(robber baron)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들인 것이다. 강도처럼 탐욕스럽고 부당한 방법을 이용하여 재물을 축적한 것을 뜻하는 강도 남작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과 세금을 만들어주는 정부의 도움을 받아 점점 더 자신들의 제국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미국 정부는 타당하게 행동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봉사단체나 마찬가지였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바로 정부의 목적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평화롭게 조율하고, 하층계급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며,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술수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작태는 하나의 모범 사례로 남아 지금 한국의 2MB 정부도 부자들의 이익을 위한 봉사단체로 힘쓰고 있으며, 국민들에게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탕발림으로 정부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속임수를 감추는 식으로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의 2MB 대통령은 미국의 건국이념과 신념, 그리고 이익과 이윤, 그리고 영토확장을 위해서라면 가치 없는 생명들의 희생은 당연히 따라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너무도 닮아 있다 하겠다. 이러한 금지해야 할 행동을 보이는 게 현 정권에 들어서일까?

이런 미국적 발상과 논리, 그리고 처리 방식은 미국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깊숙이 관여한 시점부터 적용되기 시작했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부자 중심의 바이오리듬이 형성된 것도 미국의 개입과 간섭, 그리고 통제와 압력 등의 지대한 공헌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조율과 통제를 때로는 강압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으로 가해 오면서 국민의 신변과 국민의 삶을 협박해 왔다. 그러나 언제나 그 끝은 국민의 경제적 안정과 국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위장해 왔던 것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상층계급은 정부와 법의 비호를 받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기하급수적으로 여전히 축적해 나가고 있다. 모든 공모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 이들 또한 대가를 정부와 정치가들에게 지불해야 했다. 이 책에 나온 발명왕 에디슨을 예로 든다면, 뉴저지의 정치가들이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될 법안을 만들어주면 1,000달러씩 주겠다고 약속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진 자들의 강력한 조직력으로 미국의 영토는 넓혀져 갔다. 그에 따른 하층민의 희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늘어만 갔다. 미국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 가자면 모든 것이 피의 역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워드 진이 미국 역사를 바로 쓰고자 한 것은 하층민의 희생을 외면하기에 그 수가 상당히 많고, 발생한 사건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역사에 켜켜이 쌓여 있는 진실들이 있기에 미국 역사 줄기마다 민중들의 치열했던 투쟁들을 삽입시켜 재조명하려 했고, 인위적으로 누락시키고 삭제시킨 역사의 이면을 올바로 잡고자 했을 것이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그 당시 칼과 총에 희생당한 원주민,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야만 했던 인디언,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그리고 하녀들인 여자, 사회의 최하층의 노동자, 이들의 희생을 말이다.

자신들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상층계급은 언제나 불안했다. 그렇기에 상층계급은 소외계층인 하층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국가주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국가주의는 근대에 들어서 강렬한 국가적 자긍심을 뜻하는 국가주의를 미국인들에게 심어 놓았고, 이것은 미국 국민으로 하여금 미국이 팽창할 권리와 다른 나라들의 일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나아가 그러한 것들을 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의무로 여기게 했다. 미국이 오늘날까지 못 쓸 버릇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역사는 피의 역사이고, 약탈의 역사이고, 살인의 역사이고, 민중의 희생 강요의 역사다. 우리나라 정치 논리로 따진다면 하워드 진은 극좌파다. 그리고 이 사람의 책은 모두 금서에 해당한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정부를 상대로 언제나 강도 높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펜의 힘을 더욱 강하게 높이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똑같은 대목을 이 책에서 발췌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 157쪽을 보면 이들의 행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을 벌였을 때 미국군 사망자 수가 5,500명이었고, 교전 중 사망자 수가 379명뿐이었다고 한다. 나머지 5,121명은 질병 등 다른 원인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정육업자들이 군대에 썩은 고기를 납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명의 섬사람들(필리핀인들)을 진압한 후 땅에 파묻었다. 그들의 논밭을 망가뜨렸으며, 마을에 불을 질렀고, 고부와 고아들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 ...... 그리하여 주의 뜻에 의해 우리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것이다(정부가 한 말일 뿐 내가 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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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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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영화를 볼 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볼 때가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 다만 누가 주인공이라는 것만 알고 볼 뿐이다. 이런 버릇이 발동한 영화를 볼 때는 내내 놀라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 만족하기도 한다. 대부분 후회와 놀라움이 동반된다는 안타까움만 뺀다면 나름 재미있는 놀이다.

책도 가끔 이런 식의 영화 관람을 하는 경우가 있다. 표지와 목차, 뒷표지와 앞 내용을 조금만 읽어보면 될 것을 전혀 그렇지 않고 내 직감대로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리곤 영화보다 몇 배는 더 땅을 치며 후회하곤 한다. “내가 미쳤지!” 하면서.

이번에 읽은 책도 이런 류에 속한다. 어쩌면 알고 있었음에도 책을 읽을 때까지 기억해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이 책이 보편적 글쓰기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읽어나갈수록 단순한 글쓰기가 아닌 ‘소설 쓰기’에 대한 책이었던 것이다. “맞아! 소설 쓰기 책이었지!” 거의 다 읽어갈 때서야 생각이 났다. 소설 쓰기 책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표지에 부제로 쓰여진 글이 새삼 떠올랐다.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교실이라니. 부제를 참 기가 막히게 잘 뽑아냈다. 적은 분량에 한 페이지에 차지하는 텍스트도 벙벙하게 자리잡은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림책을 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난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둘 풀어놓는 그런 친근함이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글 속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말과 인용 글이 하나로 연결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설명과 작법 예가 칠판에서 이루어지는 듯한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이 소설 쓰기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어준다는 의외성을 찾아냈다. 

어려워 말라, 첫 줄은 나중에 써라, 의미 있는 내용으로 애써 채우려 하지 말라, 독자들에게 지식을 전하려 하지 말라, 자신의 생각의 무게를 놓아라 등등의 충고를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지만 강조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조언 정도로 들린다. 무엇보다 글을 쉽게 그리고 즐겁게 쓰려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쓰고, 사소한 일들로 소설 쓰기를 시작한다면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기고 말 그대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글쓰기 책들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과, 앞서 말한 독특한 구성방식과 문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거의 다 읽을 즈음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되면서 무엇보다 이 책을 더욱 특이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중반까지는 “그래서?”라는 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중반이 넘어서면 점점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들인 소설을 쓰기 위해서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참으로 더디게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소설을 쓰기 위한 지침서이자 한 권의 소설로 느껴지는 것이겠다. 나는 그렇게 보았던 것이다. 중편의 소설로. 

서두르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우리의 아이 때의 모습을, 어린이였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라고 하는 저자의 태도가 참으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마치 걱정말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아쉽게도 난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들이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예문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기까지, 아니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기까지의 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보여준 저자의 텍스트의 힘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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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성서 이야기
이경윤 엮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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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성경 구약과 신약을 모두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 관심이 있다면 그것도 아니겠지만, 부러 읽기란 역시 쉽지 않다. 

한 인문서를 읽다가 성경이야기가 의외로 많이 나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중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하면서 고대 육대륙에서 일어난 홍수의 예를 들어가며 ‘유사하다’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에 읽은 이 책 역시 단순히 성경이야기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즈음에 일어난 유사한 사건 혹은 재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경보다 1000년이나 앞선 수메르 신화의 예가 종종 등장한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했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구약성서의 내용이 훨씬 오래 전의 수메르 신화의 기록에서 이미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수메르 신화뿐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도 천지창조에 대한 신화가 구약성서보다 훨씬 앞서서 등장한다. 이렇게 본다면 구약성서는 수메르 신화와 다른 신화들을 벤치마킹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편저자가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시하면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꼭 성경에서만 찾으려 하지 않고 신화와 설화, 그리고 다양한 기록에서 두루 찾아보려 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쉽게도 이러한 점은 이 책 중반 이후부터 사라져가고 있다.) 반드시 성경만이 가지고 있는 점이다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는 식으로 다양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구약과 신약 총정리 수준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도 편저자의 텍스트에 대한 욕심과 노력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신약의 등장인물이 나오기까지 그들의 조상은 어떻게 살았고, 믿었고, 어떻게 실천해 왔는가를 단순 서술식에서 벗어나 객관적 시선을 갖고자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개로 인해 신약까지의 연결이 무리가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사람이 만들어지고, 왜 벌을 받게 되었으며, 그 벌은 왜 노동이어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적 노동의 해석과 역사적 노동의 해석에 대한 비교도 빼놓지 않음도 물론이다. 다만 편저자가 처음에 객관적 해석과 다른 기록물을 참조하고 성경과 비교하는 형식을 취했다면 중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면은 사라지고 성경적 단어 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구약과 신약 전체의 줄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집고 넘어가고 있고, 그에 따른 나름의 해석도 꼼꼼하게 하고 있어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왜 성경을 정말 상식으로 왜 읽어야 하는지에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책치고는 잘 만들어진 책이라 하겠다. 게다가 풍부한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편저자의 생각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역할도 분명 하고 있다. 성경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이들이 한 번쯤 읽어봄직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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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오류 - 되짚어볼 세계사의 의혹 혹은 거짓말 50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이지영 옮김 / 열음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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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진 자와 승자에 의해 매순간 빠르게 기술되어간다. 반면 잘못된 역사는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린 뒤에야 극히 일부분이 그나마 바로 잡힌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부지런한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말이다.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모처럼 역사학자에 버금갈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여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한 사람을 만났다. 바로 이 책 <역사의 오류>의 저자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다. 제목이 ‘역사의 오류’인 만큼 내용도 ‘왜 오류인가’에 충실하게 다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어나갔다.

잘못된 역사 50가지를 다루려면 적잖은 지면이 필요했을 법도 한데 저자는 중언부언을 최대한 자제한 모습으로 일관해 나갔고, 특히 제한된 지면을 십분 활용해 개인적인 견해는 배제한 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오류를 논리적으로 짚어가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였다.

왜? 누가? 어떤 이유로? 역사를 왜곡하고자 했는가?를 논리적으로 잘 풀어 쓴 이 책은 자칫 흥미나 재미 위주로 풀어갈 수 있었음에도 시종 진지하게 시대적 상황과 주변 정세를 두루 이야기해 갔다. 역사적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주변인도 거론함은 물론이다.

이 책은 ‘왜?’와 ‘오류되었는가?’에 질문만 던지는 그런 무책임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그에 대한 해답까지 안겨주고 있다는 데 안도한다. 그동안 정말일까? 싶었던 사건들, 예를 들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진정한 과학의 순교자였는지, 로마 황제 네로가 정말 폭군이었지, 중세는 암흑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지, 프랑스 혁명은 진정한 시민정신의 발로에서 나온 것인지, 미국 남북전쟁 노예해방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로 발발한 것인지’ 등등을 생각과 이해가 함께 하면서 수긍이 가도록 만들어주었다.

사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 일관인 역사서들이 부지기수라 처음에는 이 책도 그 부류이겠거니 했다. 목차부터가 다른 세계사의 책들과 겹쳐진 것이 많아서다. 하지만 다른 책들과 중첩되는 역사적 사건들이라 할지라도 접근방식 면에서, 그리고 풀어가는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았다. 바로 첫 단락부터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문헌을 참고했다는 데 신뢰가 갔고, 그 문헌을 바탕으로 의혹과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논거 제시에 저자의 노력을 보았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시작된 책읽기가 역사 바로 알기의 일환으로 이어져 나름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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